21대 국회 원구성을 놓고 민주당의 으름장에 미래통합당이 몽니로 맞서는 모양새다. 지겨운 단계를 지나 이제는 없으면 오히려 허전한 것이 정치 싸움이지만, 이번에는 진검승부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관전 포인트다. 흔히 말하는 치킨게임이다.

상임위원장 배분 협상에서 통합당이 법사위원장을 고집하자 민주당이 “표결을 통해 18개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모두 가져오겠다”며 선전포고한 데서 비롯됐다. 물론 협상용 카드였지만, 주도권을 잡기 위한 수법치고는 거칠었다. 통합당은 절대 다수의 의석을 가진 민주당에게 주눅들지 않고 “아예 모든 상임위원장을 민주당이 가져가라”며 되치기에 나섰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늘 우리에게 발목 잡는다고 비판하는데 발목을 안 잡을테니 잘 해보라”라고 말했다. 조해진 통합당 의원은 “18개 상임위원장을 다 가져가라는 게 빈말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마음을 비운 듯한 발언이지만 민주당에 밀리지 않겠다는 강단과 분노가 엿보인다. 민주당이 엄포를 현실화하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계산도 선 듯하다.

민주당이 내심 당혹해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압박용으로 '위원장 독식'을 거론했지만 상대가 속된 말로 '배 째세요'라고 나오니 이제 물러서는 것이 쑥스럽게 됐다. 18개 상임위원장을 전부 차지하는 것이 민주당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니다. 기세의 충돌이다. '정치는 막판에 타협이 이뤄진다'는 말이 있지만 양쪽 모두 강을 건넜다. 섣불리 돌아서기에는 그동안 한 말이 너무 많다.

막간에 훈수를 하면, 총선 결과에 따른 비례성 원칙에 따라 상임위원장을 민주당이 11개, 통합당이 7개 차지하는 11대 7 배분안이 합당하다. 법사위원장 자리가 빌미가 돼 양쪽이 틀어졌는데, 검찰개혁을 최대 과제로 삼고 있는 민주당이 관련 법안을 처리하는 법사위원장을 고집하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니다.

국민들이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에게 절대 다수의 의석을 준 데는 검찰개혁을 제대로 해보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찌됐든 민주당은 오는 26일까지 원구성을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면서 “모든 의원들은 국회에서 한 시간 내 거리에서 대기하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전운이 감돈다.

4_15 총선 결과가 나왔을 때 “여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한 만큼 분란이 줄어들 것”, “야당의 벼랑끝전술로 발목잡기가 오히려 심해질 것”이라는 시각이 상존했는데, 역시 우리나라 정치는 후자쪽이 더 어울린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