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감정노동, 어찌하오리까
[취재수첩] 감정노동, 어찌하오리까
  • 황신섭
  • 승인 2020.06.23 17:54
  • 수정 2020.06.24 08:58
  • 2020.06.24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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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참 이쁘네.” 명백한 성희롱. 하지만 전화를 끊을 수 없다. “몇 살? 집은?”

발언 수위가 갈수록 심하다. 그래도 무조건 듣고, 참는다.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런 생활이 벌써 2년째다.

이제는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뛴다. 잠도 못 잔다. 처음엔 두통. 다음은 소화장애. 지금은 과민성대장증후군까지 걸렸다.

“볼펜도 던져요. 삿대질은 일상이고요. 감정노동을 하다 감정마비가 될 지경이죠.”

이는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경기도의 감정노동자들이 겪은 실제 사례다. 용인송담대학교가 도내 감정노동자들의 권리보장 준수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이처럼 감정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성희롱·폭언·폭행에 시달리고 있다.

감정노동은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감정 상태를 통제하고 고객에게 맞추는 것이 요구되는 형태의 노동을 의미한다. 현재 도내 감정노동자는 모두 14만3894명(2019년 말 기준)이다. 이 가운데 공무직원이 166명, 지방공기업과 출자·출연기관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종사자가 2578명이다.

또 경기도의 사무위탁기관과 지원을 받는 각종 시설에서 민원 업무를 보는 종사자가 14만명이 넘는다. 하지만 정부가 만든 법도, 경기도가 제정한 조례도 감정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한다.

정부는 2018년 10월 이른바 감정노동자 보호법을 만들었다. 이 법은 주로 기업이나 개인 사업장 등 민간 영역 감정노동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공공부문 감정노동자의 현실은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도가 2016년 9월29일 만든 '경기도 감정노동자의 보호 및 건전한 노동문화 조성 조례'도 마찬가지다. 같은 해 서울시가 제정한 '서울시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 보호 조례'와 비교하면 부족한 부분이 잘 드러난다.

도는 조례 목적을 건전한 노동문화 조성에 맞추었지만, 서울시는 기관의 의무와 종사자의 권리에 더 무게를 뒀다. 무엇보다 감정노동자 권리 존중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다르다.

도는 단순히 '감정노동자는 인간다운 노동환경을 누릴 권리를 갖는다'고 조례(제5조)에 명시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감정노동자는 산업재해 위험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조례(제4조)에 담았다. 감정노동자들이 겪는 성희롱·폭언·폭행을 산업재해로 해석한 것이다. 도가 앞으로 개선해야 할 대목이다.

일선 시·군도 문제다. 감정노동자 보호는 말뿐이다. 현재 도내 31개 자치단체 가운데 의정부·파주·고양·남양주·김포·수원·안양·평택시 등 10곳만 감정노동자 보호 조례를 만든 상태다.

양주·동두천·군포시와 가평·연천·양평군 등 나머지 21개 시·군에는 조례가 아예 없다. 감정노동자는 일터에서 마음을 다치고, 병을 얻는다. 그런 만큼 해법도 일터에 있다. 도와 일선 시·군부터 해결책 모색에 힘써야 할 때다.

 

황신섭 경기북부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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