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명의 희생자를 낸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의 합동 영결식이 사고 53일만인 20일 엄수됐다. 용접 불티가 창고 벽면에 옮겨붙으면서 시작된 참사는 명백한 인재였다. 공사 기일 단축을 위해 평소보다 많은 인력이 동시 투입됐음에도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아 인명 피해가 커졌다. 기업의 안전불감증과 이를 방치한 부실한 제도 탓에 후진적인 대형 재난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합동 영결식 하루 전날인 19일에는 청년노동자 김태규 씨 산재 사망사고 관련, 재판이 열렸다. 김태규 씨는 수원의 한 아파트형 공장 신축현장에서 화물용 승강기 추락사고로 숨졌다. 법원은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시공사 현장소장 등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원청에는 책임을 묻지 못했고, 시공사에는 가벼운 벌금이 부과됐다. 민주노총 경기본부는 지난해 발생한 경기도내 산재 사고 217건을 분석한 결과, 원청과 시공사가 직접 공사를 진행한 사고 외에 하청 공사 중 발생한 산재 사고에 대해서는 원청과 시공사가 처벌을 받은 사례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는 하루 3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매년 2000명이 중대 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다. 한국의 산재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산업재해 사업주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인한 안전불감증이 크다. 기업이 중대재해로 내는 과태료, 벌금 등이 산업안전 설비투자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다. 불법으로 인한 처벌이나 책임보다 불법으로 얻는 이익이 더 크게 보장된다면 참사는 언제든 되풀이 될 수 있다. 12년 전 이천 냉동창고 화재 때도 시공사는 벌금 2000만원으로 형사 책임을 면했다.

산재 피해 사례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으면서 중대재해를 야기한 기업주를 처벌하는 등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청기업 뿐 아니라 원청을 안전관리 주체로 규정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솜방망이 처벌이나 시늉뿐인 행정조치가 아닌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법과 제도로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다뤄져야 한다. 자연재해는 막을 수 없지만 산업재해는 막을 수 있다.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