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본 적 있는 그가 마침내 나를 점령한다

창가에는 마른 종잇장들이 찢어져

새하얀 粉으로 흩어진다

몸이 기억하는 당신의 살냄새는

이름 없이 시선을 끌어당기는 여린 꽃잎을 닮았다

낮에 본 자전거 바퀴살이 허공에서 별들을 탄주하고잠든

고양이의 꼬리에선 부지불식 이야기가 튕겨져나온다

내 몸을 껴입은 그가 밤이 가라앉는 속도에 맞춰

거대한 산처럼 자라나 풍경을 지운다

전체를 머리맡에 옮겨다 놓은 이 풍성한 은닉 속엔

한 점의 자애도 없다

온통 가시뿐인 은하는 속절없는 일침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영면 속에서 문득 깨어나 세상을 만난다. 이 아름다운 세상은 그렇게 내게로 왔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 느껴보기도 전 불면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잠'에 스며들도록 운명 지워져 있는데, 왜 고통에 몸부림쳐야 하는가.

시 '불면'에 따르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건 내 몸을 누군가에게 내준다는 것이다. 내 몸을 무단점거한 그는 내게 혹독한 징벌을 내린다. 내 몸을 껴입고 풍경을 지우며 가시로 온몸을 찌르는 극형. 그를 나로부터 내보내지 않으면 나의 삶은 연옥에 갇히고 피폐의 나날을 견뎌내야 한다.

그러나 운명은 인간에게 공평한 영면을 차별 없이 부여해왔다. 누구도 절대적 운명인 '잠'을 거부할 수 없으며, '잠'에 순응하지 않는 이에게 자비는 없다. 천하를 지배했던 진시황도 결국 잠(죽음)에 무릎 꿇고 말았음을 볼 때, 내 삶을 온전히 끌고 가기 위해서는 부조화(그)와의 화해가 필요하다.

나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불한당 같은 그놈은 누구인가? 불면에 빠진 독자들이여, 그 난폭한 불청객을 부디 사랑해 주시라. 왜냐하면 내게 극형을 내린 난폭한 그는 '오래전에 본 적 있는', 바로 '나'니까. 꿈에서 깨어나 꿈꾸며 살다 꿈으로 돌아가는 인생길에, 나의 영면을 깨워주고 세상이라는 아름다운 꿈으로 나를 초대해준 '그'는 바로 '나'라고 이 시는 말하고 있다. 매우 낯익고도 낯선 그가 이따금 떼를 쓰며 행패를 부려도, 웃어주고 달래주다 보면 결국에는 어느 종착역에서 함께 편안한 잠에 이르지 않겠는가.

 

 

 

 

 

 

/권영준·시인·삼산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