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서글픔 담백하게 그려내
▲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의 '밀희투전(密 鬪 )', '먹은 놈이 장땡이다', '땡 잡았다', '한 끗 차이', '낙장불입', '꽃놀이패', '말짱 황', 노름판에서 남을 잘 속이는 재주를 가진 사람 '타짜'도 투전판 용어이다.

비조(_調)

생명 세계로 향하던 여성의 낙관적인 소망은 비조 편 마지막 부분에서 처참한 고통 속에 수의(壽衣)를 연상시키는 죽음으로 추락한다.

“시경에서 말하는 아(雅)는 원망이 있어도 슬퍼서 말문이 막힐 정도는 아님이라, 비(_)란 원망스러운 데도 그게 깊은 것을 이름이라, 무릇 세상 인정은 아(雅)에서 하나를 잃으면 곧 염(艶)에 이르고 염하면 곧 그 형세가 반드시 탕(宕)으로 흐르니 세상이 이미 탕(宕)함이 있으니 또한 반드시 원망함이 있고, 진실로 원망을 하면 반드시 매우 심해질 것이다. 이게 비(_)를 짓는 까닭인데, 비탄은 그 방탕함을 슬퍼하는 까닭이니 이 또한 어지러움이 극한 데서 다스림을 생각함이니 도리어 아(雅)의 뜻에서 구하자는 것이다.”

1. 차라리 가난한 집 여종이 될지언정 寧爲寒家婢
아전의 여편네는 되지를 마소 莫作吏胥婦
순라 시작할 무렵 겨우 돌아왔다가 _歸巡邏頭
파루 치자 되돌아간다네 旋去罷漏後
5. 차라리 장사꾼 아내 될지언정 寧爲商賣妻
난봉꾼 아내는 되지 마소 莫作蕩子婦
밤마다 어딜 가는지 夜每何處去
아침에 돌아와 또 술주정이라네 朝歸又使酒
6. 당신을 사나이라고 일컫기에 謂君似羅海
여자인 이 몸을 맡겼는데 女子是托身
방자하니 나를 가엾게 여기지 않고 縱不可憐我
어쩌자고 나를 자주 학대하는 건가요 如何虐我頻
9. 밥상 국과 밥을 마구 잡아서는 亂提羹與飯
내 얼굴에 보이고는 문간으로 던졌지요 照我面門擲
이로부터 서방님 입맛이 달라졌지 自是_變味
내 솜씨가 어찌 옛날과 다르겠나요 妾手豈異昔
12. 일찍이 자식 없어 오래도록 한이었는데 早恨無子久
자식 없는 게 도리어 기쁜 일이로다 無子反喜事
자식이 만약 제 애비를 닮았다고 한다면 子若渠父肖
남은 인생 또 이렇게 눈물 흘렸겠지 殘年又此淚
14. 시집올 때 입었던 예쁜 붉은 치마는 嫁時_紅裙
남겨두었다 수의를 만들려고 했지요 留欲作壽衣
투전 놀음을 청하는 신랑을 위해서 爲郞鬪箋_
오늘 아침에 눈물 흘리며 팔고 왔지요 今朝淚賣歸

선생의 시는 이렇듯 당대의 삶과 인정물태 등 천지만물을 담아내려 애썼다. ‘독주문’(讀朱文)이란 선생의 글로 6회를 마친다.

“주자의 글은 이학가가 읽으면 담론을 잘 할 수 있고, 벼슬아치가 읽으면 상소문에 능숙할 수 있고, 과거시험 보는 자가 읽으면 대책문에 뛰어날 수 있고, 시골 마을 사람이 읽으면 편지를 잘 쓸 수 있고, 서리가 읽으면 장부 정리에 익숙할 수 있다. 천하의 글은 이것으로 족하다.”

‘독주문’이란, ‘주자의 글을 읽다’라는 의미이다. 주자(朱子, 1130~1200)가 누구인가. 주자학을 집대성한 이로 조선 500년간 그토록 숭앙해 마지않았던 송대의 유학자다. 그의 말은 조선 유학자들의 교리였다. 자칫 그의 심기라도 거슬리면 교리를 어지럽히고 사상에 어긋나는 언행을 했다고 사문난적(斯文亂賊, ‘사문’은 유교를 말하니 ‘유교의 적’이란 뜻이다)으로 몰렸다.

선생은 이런 주자의 글을 두고 ‘담론이나 잘하고, (중략) 서리가 장부 정리에 익숙해질 수 있다’고까지 한다. 유교의 도리로 조심성 있게 모실 주자의 글을 일상적 유용함에 갖다 붙였다. 모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선생은 이렇게 당시 전범적 문장 일체, 성리학적 세계에, 삶을 걸고 당당히 맞섰다. 선생에게 글쓰기는 오직 천지만물을 보고 이를 진솔하게 그려내려는 것뿐이었다. 요즈음 글쓰기 책들을 보면 마치 공학도 기술 연마시키듯 글쓰기 기술을 습득하란다. 아니다! 글쓰기는 선생처럼 저런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글쓰기는 기술이 아닌 마음이 먼저 선손을 걸어야 한다

다음 회부터는 야뇌 백동수가 이어진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