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된다. 1945년 9월2일 외세에 의해 한반도에 그어진 38선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충돌이 지속되다가 4년 9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그 선이 무너지면서 한반도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20개국 이상이 참전함으로써 그 규모를 보면 가히 세계대전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전쟁이다.

그로부터 50년 후인 2000년 6월 15일에는 남측의 최고지도자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휴전선을 넘어 북을 방문했다. 6·25가 선을 넘은 전쟁이라면 6·15는 선을 넘은 평화의 시작이다. 남과 북은 공동선언에서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육로로 38선을 넘었다. 2018년에는 남북의 최고지도자들이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나란히 백두산에 오르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비무장지대 감시 초소를 상호 폭파하는 등 실천적 조치가 빠른 속도로 진행될 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평화가 한반도에 도래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2018년 하반기부터 강력한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미국은 이른바 속도조절론을 내세워 한반도 일에 노골적으로 간섭하고 나섰다. 5·24 조치의 해제는 남북이 관계 개선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기본적인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반대로 좌절당했다. 2018년 11월 출범한 한미워킹그룹은 미국의 간섭이 관철되도록 하는 기구 역할을 하고 있다.

남과 북이 분단선을 넘나들면서 평화의 새 출발을 다짐했지만 실천을 위한 조치가 번번이 가로막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민족은 군사분계선 외에 미국의 간섭이라는 또 다른 선이 엄연히 있음을 실감하게 됐다.

이를 가장 뼈저리게 체험한 것이 청와대요, 문재인 대통령일 것이다. 능라도 경기장에서 15만 평양 시민들을 상대로 민족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며 연설할 때의 진심은 2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우리가 넘어야 할 선은 두 개다. 하나는 남북을 가르고 있는 군사분계선이요, 다른 하나는 우리 민족과 외세 사이에 그어져 있는 보이지 않는 선이다. 군사분계선은 남북이 감시초소를 상호 폭파함으로써 넘어섰지만 외세의 간섭은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위장됐던 선,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결정적 걸림돌이 되고 있는 선, 그 선이 이제 뚜렷하게 그 실체를 드러냈다. 그 선을 넘지 못하면 평화도 통일도 없다.

지난 5월31일 한 탈북자 단체가 대북전단을 살포한 것을 계기로 북측이 전례 없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통신 연락선을 차단하고 남북군사합의 파기까지 거론하는 것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북측은 지난 2년 동안 전례 없는 평화적 조치로 정세를 주도하면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판단한 것이다. 남측이 과연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원칙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이뤄내는 동반자가 될 수 있을지 …. 그리고 회의적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남과 북이 힘을 합쳐서 외세를 극복하고자 했던 최선의 방책을 이제는 접은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차선책이다. 이는 북측이 남측을 추동하여 외세에 맞서게 하는 강제적 조치다. 이제부터는 일일이 간섭하면서 남측을 압박할 것이다. 그 첫 번째 압박이 대북전단 살포를 막으라는 것이다. 이후 무엇이 됐든지 미국의 압박 이상으로 강하게 몰아붙일 것이다. 남측이 택할 수 있는 것은 둘 중 하나다. 외세냐 민족이냐. 역사는 말한다. 민족과 함께하면 죽어도 사는 것이요, 외세와 함께하면 살아도 죽는 것이다. 외세의 간섭, 이제는 그 선을 넘자. 아니면 죽는다.

 

지창영 평화협정운동본부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