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가 지나간 여름

바람도 지쳐 헐떡이는 숲길에서 죽어 있는 나무를 보았다

 

허공을 더듬어 키우던 가지도 땅 속 어둠의 깊이를 재던 뿌리도 목축이며 살을 찌우던 나이테도 모두 멈춘 지 오래된 나무를 숲에서 보았다

 

바람은 숲길을 지나가며 너덜너덜한 옷을 한 꺼풀씩 데려갔고

휑하니 드러낸 속살

습기는 구석구석을 파고들며 선명한 나이테의 금을 갉아먹었다

 

푸석거리던 살점들이 부서져 생긴 빈틈

숭숭 뚫린 창마다 작은 햇살이 찾아오고 더위에 지친 바람도 한가로이 쉬다 가는 곳

나무는 살을 내어준 그 틈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모두를 내어 줘 앙상하게 드러난 뼈

벌레들은 이 방 저 방 보금자리를 만들고 포동포동 살을 찌운 애벌레들이 만찬을 즐기는 곳

나무는 뼈 속에 모든 생명을 잉태하고 있었다

 

긴 장마가 지나간 여름

바람도 지쳐 헐떡이는 숲길에서 영원히 살아 있는 나무를 보았다

 

 

숲길을 가다보면 '고사목' 하나쯤은 흔하게 볼 수 있다.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말라비틀어진 고사목. 그러나 시인은 고사목의 형상이 아니라 고사목이 품고 있는 빈 공간을 들여다본다.

시인의 촉수는 '푸석거리던 살점들이 부서져 생긴 빈틈'이나 '앙상하게 드러난 뼈 속'과같이 '죽어 있는' 지점이 아니라, 지친 바람도 한가로이 쉬다 가고 무수한 애벌레들이 자라고 있는 '생(生)의 공간'에 가 닿아 있다.

그러면서 '죽어 있는 나무'가 '영원히 살아 있는 나무'라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고사목'이 아니라 '존재와 삶'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존재의 속성으로 보고 있는 어떤 목적도 그 존재에 대한 해석에 불과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시인은 '고사목'을 통해 보여주는 셈이다.

이렇듯 이 시는, 우리가 대립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들, 즉 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 쓸모 있음과 없음 등은 서로 다르지 않으며,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와 삶이 가치 있음을 역설한다. 어떤 존재이든 쓸모없는 것은 없다. 우리 모두는 어느 곳에선, 또 어느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존재다.

/강동우 문학평론가·가톨릭관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