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이 할퀴고 간 시대, 한국에는 변변한 목재산업조차 없었다. 대부분 도벌한 나무들을 판재나 각재로 켜내는 제재소 수준이었다. 이문열의 초기작 <미로일지>에는 그 시절 어느 지방 중소도시에서 잘 나가는 제재소의 일터 풍경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일제시대때 지어진 학교들의 교실 외벽도 콜타르를 칠한 판재로 마감돼 있었다. 그래서 꼬맹이들도 나무판때기를 일본말 '이다(板)'라 부르던 시절이다.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되면서 국내 목재산업도 새 국면을 맞는다. 베니어판이라 부르던 합판이 '증산_수출_건설' 시대와 맞물려 거대 시장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부산의 동명목재상사는 합판으로 재벌 대열에 올랐다. 세계 3위권의 합판 대기업으로 성장, 삼성이나 신진(대우자동차 전신)그룹 등과 어깨를 겨루었다. 당시 동명목재의 합판 수출액이 삼성물산의 수출 실적을 앞섰다고 한다. 인천도 일찍부터 합판산업의 중심이었다. 1936년 일제의 군수용으로 조선목재공업이 국내 처음으로 합판을 생산했던 고장이다. 인천과 부산에 목재산업이 성했던 것은 원목 수입 등 대규모 물류가 가능한 항구가 발달해서다. 당시 인천 북성포구 앞바다에서는 수입 원목 더미들 사이에서 물놀이하던 아이들이 가끔 실종되기도 했다고 한다.

▶세계 목재산업에 초고부가의 우드슬랩 시장이 뜨고 있다고 한다. 우드슬랩은 나무판자의 가장자리를 재단하지 않고 수피만 제거해 한 덩어리 판재로 사용하는 가구를 말한다. 그래서 공장의 대량생산처럼 똑같은 디자인의 동일한 제품이 나올 수가 없다. 옹이나 구멍 등도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진다. 수령 수백년의 호두나무, 느티나무, 삼나무, 월넛, 부빙가 등이 많이 사용된다. 일본계 미국인 조지 나카시마는 우드슬랩 가구를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은 가구작가로 꼽힌다. 2011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조지 나카시마의 테이블 세트가 1억4500만원에 낙찰됐다. 생전에 우드슬랩 가구를 애호했던 스티브 잡스는 그에 대해 “나무의 영혼을 어루만진 장인”이라 불렀다고 한다.

▶인천의 대표적 향토기업 영림목재가 지난 주 서울 강남에 '나무로 서울'을 오픈했다. 이 회사의 우드슬랩 전시점이다. '나무로'는 브랜드네임이다. 이미 9년 전부터 세계의 밀림들을 찾아가 수령 150~500년의 600여 수종 통원목을 확보했다. 통원목 건조에만 이만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50년 전 창업 초기 파쇄목으로 소주상자, 간장상자를 만들던 회사가 세계 초고부가 시장에 진출한 것이다. 인천산 우드슬랩은 인천의 또 하나 자랑이 될 것이다. '나무로'라는 브랜드가 참 듣기 좋고 편하게 다가온다. 세계 어디서든 통할 것만 같은 이름이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