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통일부 브리핑에서 5·24 조치 시행 10주년을 앞두고 정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5·24 조치는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유연화와 예외조치를 거쳐 왔다”며 “사실상 그 실효성이 상당 부분 상실됐다”고 밝힌 여상기 대변인의 답변이 주목을 끌었다. 여 대변인의 발언이 전해지자 '실효성 상당부분 상실'의 속뜻 찾기에 나선 평론가들은 대변인의 발언은 '5·24 조치 폐기 선언'을 위한 정지 작업이라는 해석까지 내놓았다. 이튿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한적십자사 헌혈행사에 참여한 김연철 장관이 “5·24 조치 폐기를 검토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통일부의 입장과) 그것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며 즉답을 피했고 정부는 5·24 대북제재 조치가 실효성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는 입장을 '5·24 조치 폐기'로 연결시키는 해석에 선을 그었다. 이로써 그동안 맞섰던 5·24 조치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이제는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층 더 뜨거워졌다.

5·24 조치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은 “5·24 대북제재 조치는 천안함을 공격 도발한 북한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러니 북한의 사과 한마디 없이 5·24 조치 폐기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천안함 용사들은 북한을 용서한 적이 없는데 문재인 정부가 무슨 자격으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푼단 말인가”라고 비판하며 '5·24조치는 사실상 실효성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는 발언까지 성토하는 분위기다.

이에 반해 5·24 조치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5·24 조치를 공표한 이명박 정부도 천안함 사건 이듬해인 2011년 9월부터 이미 비정치·종교·문화계의 방북을 선별적으로 허용하면서 벽을 낮춰 왔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2013년 11월 남·북·러 물류 협력 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5·24 조치의 틈을 크게 벌렸다. 게다가 2016년부터 유엔과 미국이 본격적인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면서 5·24 조치만의 특별함은 이미 사라졌다. 그러니 실효성이 없는 5·24 대북제제 조치 폐기를 선언해 막혀 있는 남북대화의 물꼬를 터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재의 틈을 찾아 틈새를 만들어 남북경제협력 재개를 모색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러한 기류 속에서 개성공단기업협회 등 249개 시민사회단체는 5·24 조치 해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의 과감한 결단이 있으면 행정조치에 불과한 5·24 조치는 지금이라도 해제할 수 있다”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5·24조치 '유지'와 '폐지'로 나뉜 두 주장의 이면을 보자. 먼저 북한의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고 '유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종종 “당신은 천안함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는 사실을 믿는가?”를 묻는다. 천안함 희생자 10주기 추모식에서 참석해 분향하고 있는 대통령에게 희생자의 유족이 다가가 “이게(천안함 폭침) 북한 소행인가, 누구 소행인가 말씀 좀 해주세요?”라고 물을 정도로 이 질문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사상 검증의 수단이고 때로는 진영을 나누는 기준이 된지 오래다.

하지만 북한의 소행이라는 증거가 없다거나 불충분하다고 믿는 이들이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정부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꺼내 상대를 설복시키려는 태도는 현명치 못하다.

5·24 대북제재 조치의 유지나 폐지를 선택하는 것은 선과 악의 문제이거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실리를 따지는 문제이고 우리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을 위한 길에 나서는 문을 다시 여는 일이다.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다. 북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에서 450만여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북으로부터 어떤 사과나 유감 표명조차 들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부는 1972년 7·4공동성명을 체결했고 노태우 정부는 UN에 동시 가입했다. 이런 결단과 그 성과들을 기반으로 김대중 정부의 6·15남북공동성명과 노무현 정부의 10·4남북정상선언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4·27판문점선언부터 9·19군사합의서까지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왔음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천안함 침몰의 경위도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 상대가 안했다는데 물러설 수 없는 증거를 대지 못하면서 자백만을 강요하며 우리의 실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 과연 현명한 처사인지 생각해 보자. 6·25전쟁 70주년을 코앞에 둔 6월을 맞으며 지금 우리가 행정명령인 5·24 대북제재 조치의 유지와 폐지를 두고 진영 논리에 갇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도리어 퇴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되돌아 볼 일이다.

 

 

정세일 생명평화포럼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