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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 바다의 고고학 산책(3)] 불로동 유적, 흔한 돌이 도구로
[섬과 바다의 고고학 산책(3)] 불로동 유적, 흔한 돌이 도구로
  • 인천일보
  • 승인 2020.05.28 19:00
  • 수정 2020.05.28 18:53
  • 2020.05.29 경기판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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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불로동유적' 보고서 중에서

 

원당동 유적은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인천 최초의 구석기 유적이다. 인천 역사의 시작이 신석기시대에서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감을 증명한 유적이었다.

이번은 인천의 구석기 유적 중 두 번째로 확인된 불로동 유적을 살펴본다. 이 유적은 검단 신도시 건설을 위한 토지구획정리사업 지구에 포함되어 지표조사가 실시되었고, 그 결과 2003년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인천 구석기인들, 식량 획득 유리한 낮은 구릉에 살아

불로동 구석기인은 어떤 장소를 택해서 살았을까. 이 유적의 입지는 원당동 유적과 비슷한 해발 20m 내외의 구릉성 산지에 자리잡고 있다. 고(古)지형을 감안해 입지를 살펴본다면 서해나 한강, 즉 물은 지금보다 훨씬 가깝고 높지 않은 구릉에 살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수해 대비 및 구릉과 주변 산지에서의 사냥과 채집활동, 그리고 한강과 서해에서 무난한 어로활동 등이 최대 이점이었을 것이다. 원당, 불로동 두 유적은 인천지역 구석기 유적의 전형적인 입지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며, 향후 우리 고장에서 구석기 유적을 찾는데 결정적 단서가 될 것이다. 석회암 지대에 발달한 동굴 혹은 바위그늘 유적이 존재하기에 어려운 지형조건이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석영제 돌감으로 석기 만들어

요즘 현대인들에게 스마트폰이 필수품이라면 당시 구석기인의 필수품은 무엇이었을까? 맥가이버칼에 비교되는 만능 도구인 '석기(石器)'일 것이다. 이 유적의 유물 돌감은 주로 석영계통인데, 총 89점의 출토유물 중 84점이 석영 혹은 석영맥암으로서 이웃한 원당동 유적과 비슷한 양상이다. 흔히 석기 유물은 돌감의 차이에 따라 형태나 쓰임새 표현 같은 석기의 질이 결정될 만큼 어떤 재질을 썼느냐가 중요한데, 석영계통은 이미 조성과정에서 대부분 불규칙적인 결정체 구성에 따라 잔손질이나 제작 의도대로 만들기 어려워 유물의 정교함은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석영은 모스 경도 7로 매우 단단한 광물이며, 자르기, 깍기, 뚫기, 긁기 등과 같은 석기 기능에 있어 매우 유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유물의 종류는 자갈돌 48점, 몸돌 16점, 격지 6점이 79%로서 대부분을 차지하며, 나머지는 주먹도끼 1점을 비롯해 1~2점의 찍개, 긁개, 망치 등이다. 이 의미는 석영 자갈돌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 석기제작소 혹은 집터의 부재, 출토유물이 100점 미만의 소규모라는 점으로 보아 불로동 유적에서의 점유 기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연대는 광 여기 루미네선스(OSL) 방법을 통해 측정한 결과 지금부터 2만2000~2만6000년 전으로 확인되었다. 당시는 갱신세 마지막 빙하기인 위스콘신(Wisconsin) 혹은 뷔름(Wuerm) 빙기가 점차 진행되던 시기로서 추위로 인해 서해의 바닥은 노출로 사막화가 되어 중국과 상호 육상이동이 가능했던 시기이다. 혹시 구석기시대의 인천지역은 중국에서 서해를 거쳐 들어온 고인류가 한강 유역으로 이동하거나 역으로 중국으로 이동하는데 거점 지역으로서의 가능성도 눈여겨볼 일이다.

 

 

김석훈 (사)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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