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왕·인도 고승, 나를 찾기 위한 선문답
▲ 나가세나

 

▲ 밀린다 왕

 


<밀린다 왕의 물음>은 중세 인도아리아어의 일종인 빨리어로 지어진 불교 고전 중의 하나인 <밀린다팡하>를, 동·서양의 여러 번역본을 대조하여 우리 시대의 살아 숨쉬는 한국어로 옮기고, 원 텍스트의 참뜻을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해설을 붙여 쉽게 풀어쓴 책이다.

<밀린다팡하>가 지닌 문헌적 가치는 첫째,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그리스의 밀린다 왕과 인도의 불교 고승 나가세나 사이에서 벌어지는 질문과 답변, 곧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동서문화의 교섭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둘째, 밀린다 왕이 서구 문명의 관점과 시각에서 불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개인과 자유, 합리적 사고를 중시하는 서구식 교육을 받은 오늘날의 현대인들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셋째, 불교 고승 나가세나에게 답변을 요구하는 밀린다 왕의 질문은, 거침이 없이 당당하며, 예리하고 날카롭지만 적확한 비유와 보편타당한 논리로 답변하는 나가세나의 통찰력과 지혜는, 읽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넷째, 이 불교 고전에는 역사적 사실과 픽션이 뒤섞여 있지만, 기원전 1~2세기 인도 서북방 불교의 특징과 관심사를 읽을 수 있다.

밀린다 왕(기원전 163년~120년 재위)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대제국의 유산인 박트리아 왕국의 통치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많은 정복 전쟁을 치렀고 전성기에는 박트리아 지역(아프가니스탄 북부)에서 북인도의 줌나 강에 이르는 방대한 제국을 경영했다.

나가세나는 불교의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고승으로서 변설에도 능한 현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밀린다 왕에 대한 역사 자료는 비교적 풍부한데 비해 나가세나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 책은 '무아'에 대한 문제 제기로부터 그 첫발을 떼기 시작한다.

“밀린다 왕: 당신은 누구이며,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가세나: 동료 수행자들은 저를 나가세나로 부릅니다만, 그 '나가세나'란 단지 이름이고, 호칭이며, 통칭에 불과합니다. (이름에 대응하는)'실체적 존재'는 없습니다.“ ('당신은 누구인가' 37쪽)

이 문답에 대해 지은이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부한 '요주(腰註)'는 “우리가 '아무개'라고 하든, '사람'이라고 하든 우리가 이름을 사용할 때 은연중에 전제하고 있는 것은 그렇게 불리는 존재가 그 자체로 영속성을 가지고 실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라고 불리는 존재를 면밀하게 살펴보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무상(無常)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우리는 '무상한 변화'에 이름을 붙여서 부르면서 마치 변치 않는 무엇이 있는 듯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지은이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중국 화엄철학의 형성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에서 20여 년 불교철학을 강의하면서 철학사상연구소 별책으로 <밀린다팡하>, <중론>, <대승기신론>, <금강삼매경론>을 출판했다. 지눌의 <정혜결사문>을 풀어썼고, 용성의 <각해일륜>을 영역했으며, 최근 '수인총서'의 첫 권으로 <空-반야심경 읽기>를 출간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