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수구 주민들이 즐겨찾는 청량산 정상 부근에 두 달 전쯤부터 청설모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어느새 사람과 친해졌는지 근처를 맴돌고, 등산객들은 이 장면을 휴대폰으로 찍으려고 몰려든다. 새삼스런 청설모 출현을 두고, 코로나 사태로 산행객이 크게 줄어들자 서식환경이 좋아졌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나왔다.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라는 세계적 재난이 깨끗한 생활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반가운 봄에 불쑥 찾아오는 미세먼지가 크게 줄어들었다. 올해 인천지역에 발령된 미세먼지 주의보는 9회로, 지난해 같은 기간(40회)보다 크게 감소했다. 코로나로 소비가 위축됨에 따라 공장가동률이 줄어든 것과 에너지소비 감소 등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탈리아 운하에서 사라졌던 물고기가 다시 나타나고 지구온난화가 완화됐다는 소식도 있다. 인간의 활동이 줄어들자 동물들이 서식지로 돌아오거나 대기환경이 개선되고 있는 것이다. 환경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구 본래의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다.

바이러스 확산이 오히려 자연환경에 긍정적이게 된 것은 코로나 사태가 자연파괴와 초밀도시화, 무분별한 동물 살육 등에서 비롯됐다는 설을 받쳐주고 있다. 바이러스 사태는 촘촘한 도시인의 삶을 일순간 정지시킴으로써 사는 방식에 깊은 '구멍'은 없었는지 되돌아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익이 생긴다면 못하는 것이 없는 무차별한 개발과 인간지배 중심의 세계관에 대한 의문도 가져보라고 주문한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자연을 정복·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물론 코로나가 극복되면 삶의 방식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애써 이룩한 번영과 편리성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속성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는 과잉생산된 문명의 이기가 자연을 황폐화시키고, 치열한 질주만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반성없이 지속되면 인류는 언제든지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인간이 자연과의 조화, 동물과 상생의 중요성을 진정으로 깨달았다면 다행한 일이다. 사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이를 알았음에도 다큐멘터리 영상을 볼 때만 경각심을 갖는 정도에 그쳤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다가 반복되는 무감각을 질타하는 강력한 바이러스를 만난 것이다.

'바이러스의 역습'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우리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토록 바이러스에 시달렸는데 깨달음이라는 대가는 있어야 덜 억울하지 않겠는가. 코로나19 이후 삶에 방식과 태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