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21대 국회가 개원한다. 4·15 총선은 여당의 압도적인 승리, 야당의 참혹한 패배였다. '여소야대'의 정국을 깨고 인위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 확연한 '여대야소'의 국회를 구성했다.

인천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인천사람'이 되어 사는 '작은 한반도'로 불린다. 그래서 역대로 인천의 선거결과가 전국 구도의 바로미터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은 이미 여당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예견이 많았다. 결국 11대 2, 영·호남의 지역주의 선거 결과를 보는 듯 일방적인 여당의 완승이었다. 야당(미래통합당)은 왜 그리 맥을 못 추었을까. 21대 국회 개원을 앞둔 시점에서 지난 총선의 당선 요인보다 낙선의 의미를 다시 되짚어 생각하게 된다.

최근 몇몇의 당선인을 만나면서 선거의 키워드를 듣고, 무엇보다 '인천의 자존심'이 떠올랐다. 총선 전까지만 해도 정부 정책에서 '인천 패싱' '인천 홀대'를 비판했던 인천시민의 목소리들은 후보들의 가슴에서 사라진 듯했다. 웬만하면 바람 타고 당선 티켓을 거머쥘 것이라는 착각이야말로 인천을 가볍게 본 큰 실수다. 선거에 2등이 있을 리 없다.

이번 총선에서 태어난 곳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 인천에 오래 산 인천사람들이 당선됐다. 특히 한 번의 낙선을 경험하고 재도전에서 승리한 더불어민주당 허종식 당선인의 선거 전략과 캐치프레이즈가 인천사람의 자존심을 담아냈다는 평가다. '동네 사람'이다. 그가 출마한 동구·미추홀구갑 지역은 전통적으로 보수의 텃밭이었다. 보수가 내리 당선됐던 지난 8번의 국회의원 선거 후 처음으로 진보 당선자를 냈다. 결국 야당의 중앙에서 지역으로의 '폭투' 공천은 매우 불리한 카드였던 셈이다.

허 당선인은 40년을 지역구에서 살아왔다. 그는 “주민과 함께 거주하는 진짜 '동네사람'만이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호소했다. 그렇다. 인천 사람, 더해 동네 사람이 친근하고, 인천의 자존감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나와 지역의 아픔을 치유하고, 가려운 곳을 긁어 줄 수 있는 선량은 바로 이웃이라는 믿음이 있기 마련이다.

이 뿐인가. 지난 총선에 이어 무소속으로 4선 고지를 밟은 윤상현 의원은 “주민들과 동고동락하며 애환을 함께 나눈 신뢰가 승리의 원동력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선거를 위해 지역에 온 후보들과 지역을 위해 출마한 윤상현 중 적임자를 심판해 달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혹자에 따르면 '윤 의원은 자신의 휴대폰에 수만명의 유권자를 관리한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동네 아저씨'로 통한다. 그 또한 “야권의 참패는 '전략 부재' 등이 빚은 예견된 결과”라고 일침했다.

물론 여당의 인천 공천에서도 무늬만 인천 사람의 사례도 있었다. 또 대선후보 경선에도 나섰던 야당 후보가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고, 지역을 맴돌았으니 인천시민의 자괴감과 분노가 가슴 한 켠을 움켜쥐게 했을 것이다. 공천을 '줬다 뺏었다'를 반복했으니 이런 공천 코미디가 또 있을까. 야당의 인천 참패는 공천 전략의 부재가 불러온 재앙이다. 더욱이 젊은 정치인들의 설 자리마저 잃게 한 실투였다.

인천을 가볍게 본 야당의 인식이 맹랑하다. 인천시민의 자존심을 밟지 않았어야 한다. 어려운 경제 여건은 극복하려 하지만 자존심이 꺾이면 발끈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오는 30일 임기를 시작하는 21대 국회를 앞두고 인천발전을 위한 압도적인 여당 당선인들의 책임이 클 수밖에 없다. 300만명의 인천은 위성도시가 아니다. 인천시민은 대한민국 제2 도시로서의 자존심을 세우려 한다. 시끄러웠던 GTX-B노선 예비타당성 시비, 국제관광도시 탈락,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유치 실패, 수도권 매립지 문제 등과 같은 사례들이 반복되어 상처를 이고 살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야당 공천을 받은 인천 낙선 후보들의 인물론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야당의 폭망 공천으로 자존심이 상한 인천시민의 정서를 회복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외지에서 온 후보들이라 하더라도 지역 발전에 헌신할 '동네 사람' '인천 사람'으로 '동고동락' 한다면 인천시민들은 다시 따뜻하고 넓은 가슴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우리 동네 사람'은 소설의 주제로 다뤄질 만큼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인천은 해불양수(海不讓水)의 도시라고 하지 않았는가.

/논설주간 김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