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당하는 순결한 영혼을 감싸는 구원의 불꽃
▲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 중 잔 다르크가 순교를 선택하는 장면.


“너는 왜 남자 옷을 입었느냐?”

종교재판관은 남자 옷을 입은 잔 다르크에게 집요하게 여자 옷으로 갈아입을 것을 종용한다. 풍속을 문란하게 하는 이런 옷들은 하느님에 대한 모독이라고 윽박지르면서 말이다. 잔 다르크가 이에 끝까지 응하지 않자, 재판관은 급기야 버럭 화를 내며 그녀를 '사탄의 창조물'로 몰아세운다.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1928)은 영국과 프랑스가 치른 백년전쟁이 한창이던 15세기 전반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음성을 듣고 참전하여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 잔 다르크의 일생 중 마녀로 몰려 종교재판을 받고 화형당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담아낸 무성영화이다. 덴마크 거장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감독은 얼굴 클로즈업 이미지들로만 거의 구성된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영화스타일을 선보이며 길이길이 기억될 위대한 영화를 인류사에 남겼다. 그리고 순박하면서도 순교자의 열정과 고통을 지닌 잔을 형상화한 마리아 팔코네티의 얼굴은 영화사에 두고두고 회자되며 관객들 뇌리에 깊이 아로새겨졌다.

 

클로즈업 미학으로 표현해낸 극과 극의 투쟁

카메라가 수평 이동하면 자리에 착석한 재판관들의 뒷모습이 차례로 보이고 이어서 겁에 질린 얼굴로 두 눈을 크게 뜬 잔 다르크가 재판정 안으로 끌려 나온다. 오프닝부터 재판관들의 질문과 잔의 대답이 팽팽하게 맞서는 극과 극의 투쟁이 전개된다. 영화 프레임을 가득 채운 인물들의 얼굴 클로즈업은 언어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이 투쟁에 가담한다. 그야말로 얼굴 대 얼굴이 맞붙는 격렬한 전쟁이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물론 이 전쟁은 성직자, 신학자들로 구성된 다수의 재판관에 맞선 잔의 외롭고도 고통스러운 싸움이다. 부릅뜬 두 눈, 비난을 퍼붓는 입, 위선적인 눈빛 등 편협하고 위압적이고 권위적인 얼굴들에 고문당하는 19세 시골 소녀 잔이 직면한 투쟁은 사실 영혼의 구원을 위해 무릅쓴 '편협함'과의 외적·내적 투쟁이다. 잔은 불합리한 질문공세를 해대며 자신을 마녀로 모는 재판관들의 편협함에 맞섬과 동시에 죽음에 대한 공포로 쇠약해져만 가는 자신의 신념을 지켜야 하는 위기에 놓인다. 잔이 겪는 고초는 교회를 거대한 괴물 리바이어던으로 변모시킨 인간들의 편협한 사고에 의해 초래된 결과인 것이다. 어느덧 중세의 교회는 거대한 권력으로 인간들 위에 군림하며 구원의 빛을 가로막는 영적 어둠의 장본인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순결한 영혼을 지닌 잔에게 비추는 구원의 빛을 거대 괴물 리바이어던도 막지 못한다. 죽음이 두려워 거짓 자백서에 서명했다가 이를 철회하고 순교를 선택한 잔의 숭고한 모습에 그녀를 압박하고 위협했던 재판관들마저 숙연해진다. 여태껏 잔을 끈질기게 추궁했던 “마녀냐, 성녀냐”는 이제 무의미한 질문이 되어 버렸다. 이 순간 죽음의 공포를 극복한 한 숭고한 인간의 얼굴이 그들 눈에 들어올 뿐이다.

잔 다르크의 죽음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순교를 선택한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의 죽음은 우매한 다수의 편협함에 의한 순결한 영혼의 순교인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이런 일은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인간들이 '무지(無知)의 지(知)'를 깨달아 편협함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말이다. 그때까지는 고난의 불꽃과 함께 구원의 불꽃이 함께 타오르리라.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