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험에 처하면 죽은 척하는 등 나름의 생존법을 구사하는 밤게. /사진제공=국립생물자원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게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르게 옆으로 걷는 것일 것이다. 걸어 다니는 게든, 헤엄을 치는 게든 이는 일반적인 게들의 특징이다. 그러나 그 상식을 깨는 게가 있으니, 바로 밤게이다. 밤게는 몸이 둥근 밤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학명에 완두, 콩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pisum'을 사용한다. 영어 이름도 조약돌게(pebble crab)이다. 밤게는 칠게와 길게 다음으로 인천을 비롯하여 서해안과 남해안 갯벌에 매우 흔하게 서식한다.

밤게는 다른 게들과는 다르게 매우 느릿하게 움직이고, 다리가 짧아 몸을 갯벌 바닥에 붙이고 움직인다. 때문에 갯벌 밖에서는 밤게의 움직임을 쉽게 관찰하기 어려우나 갯벌 안으로 들어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밤게의 모양을 살펴보면, 갯벌에 사는 일반적인 게들과는 다른 모습인 것을 발견할 것이다. 갯벌의 게들은 몸이 사각형으로 약간 길쭉하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밤게는 몸이 둥근 밤모양이다. 또한 '마파람에 게눈 감춘다'는 속담에서 보듯이 게들은 눈을 숨기는 모습이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눈자루가 긴데, 밤게는 머리 앞쪽에 붙어있어 자세히 관찰해야만 눈을 확인할 수 있다.

밤게는 위험에 처했을 때 취하는 4가지 행동이 있다. 첫째, 죽은 척을 한다. 밤게는 걸음이 느려 위험에 처하면 도망치지 않고 몸을 웅크리고 죽은 척을 한다. 둘째, 민꽃게처럼 몸을 세우고 기다란 두 집게발을 위로 뻗어 건드리지 말라는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셋째, 밤게는 갯벌에 구멍을 파고 서식하는 여느 게들과는 다르게 따로 집을 짓고 살지 않아 위험에 처하면 다리와 몸을 움직여 갯벌 속으로 자기 몸을 숨긴다. 걸음이 느리니 걸어서 도망치는 방법보다는 이 방법이 더 효과적이다. 마지막 방법은 우리의 상식을 깨고 앞으로 걸으면서 도망치는 방법이다. 밤게는 위험에 처하거나 먹이를 찾아다닐 때 포복하듯이 집게발을 번갈아 가며 땅을 짚고 앞으로 걷기 때문에 옆으로 걸어 다니는 다른 게들에 비해 매우 느리게 걷는다. 덕분에 밤게를 잡으려고 빠르게 뛰지 않아도 천천히 뒤쫓아가며 앞으로 걷는 밤게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일반적인 게들은 다리 사이 간격이 매우 좁아 옆으로 걷는 것이 더 효율적이나, 밤게는 다리 사이 간격이 넓고 가느다란 원통 모양의 다리를 가지고 있어 앞으로 걷기에 수월한 모습이다. 옆으로 걸으면 빠르게 도망칠 수 있어 더 유리할 텐데, 앞으로 느리게 걷는 것을 택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구멍 같은 집을 짓지 않고 살아 구멍에 편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옆으로 걷지 않아도 되는지, 갑각이 매우 두꺼워 천적을 피할 이유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는 우리가 밝혀야 할 숙제로 아직 남아있다.

이처럼 생물은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모습으로만 살아가지 않는다. 먹이에 따라, 서식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만약 이런 다양성이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고 일률적인 방식으로 살아갔다면, 모든 생물이 멸종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갯벌에 가볼 기회가 생긴다면, 앞으로 걸어 다니는 밤게와 함께 천천히 갯벌을 거닐어보자.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많은 생물의 다양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은예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