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년 전 국채보상운동이 격해지는 한일 갈등 속에 지금 다시 회자되고 있다. 국채보상운동은 알겠는데 그 운동의 결과는 기억나지 않는다. 실패한 역사이기에 역사 시간에 배우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역사책을 다시 들춰봤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이 강압적으로 한국에 떠안긴 차관 1300만원을 온 국민이 모금으로 갚기 위해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이다. 대구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전국으로 퍼져 노동자와 농민, 부녀자, 인력거꾼, 영세상인, 학생 등 모든 계층이 참여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방해하기 위해 회계를 맡은 대한매일신보사 총무 양기탁을 1908년 7월 국채보상금 횡령 혐의로 구속했다. 양기탁은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됐지만, 보상운동은 위축됐다. 결국 모금액 20여만원은 국채보상금처리회를 통해 교육에 투자하기로 했지만, 이 또한 일제 강점 직후 모금액 전부를 경무총감부에 빼앗기면서 모든 계획은 무산됐다.

2018년 3월 건립된 안성 평화의 소녀상을 놓고 말이 많다. 당시 건립추진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은 현 민주당 이규민 국회의원 당선인이 2013년 현재 논란이 된 안성 힐링센터 부지와 건물을 정의기억연대 측에 소개했다는 이유로 구설수에 올랐다. 이 구설수는 안성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 과정까지 확전됐다.

논란의 요지는 이 당선인이 2017년 10월 방송인 김제동 초청강연회를 열었는데 이때 강사료로 1500만원 줬다는 것이고 이것이 실정법 위반이란 내용이다. 한 시민단체가 이 당선인을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당선인은 지난 21일 입장문을 내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당선인의 실정법 위반 여부는 앞으로 사법기관이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각종 의혹을 제기한 측이 SNS 밴드모임인 '안성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를 한 번만 찾아봤으면 깔끔하게 정리될 문제였다. 이 밴드 모임에는 2017년 4월 안성시 한 식당에서 시민 27명이 모여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그 이후 활동을 자세하게 기록해놨다. 논란이 된 김제동 초청강연회를 놓고 추진위원회 내부에서 찬반 의견이 맞섰던 당시 내용과 결국 운영위원회 투표로 결정하는 과정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당시 김제동은 받은 강사료 중 300만원은 안성 평화의 소녀상 건립 분담금으로 내고 나머지 금액은 미얀마 학교 건립에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제동 강연회를 마친 뒤 중_고등학생,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운동 참여가 늘었던 것도 사실이다. 국채보상운동을 안성 평화의 소녀상 건립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두 사안이 클로즈업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현재 이규민 당선인에 대한 단순한 의혹 제기가 평화의 소녀상 건립 자체를 부정하거나 그 뜻을 폄하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잘못된 것이 있어 책임질 일이 생기면 당사자가 감당하면 된다. 어떤 이유라도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참여한 수많은 시민의 뜻을 훼손해선 안된다. 113년 전처럼.

독일 나치당 선동가인 괴벨스가 한 말로 알려진 내용이 되새겨진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는 사람들은 이미 선동되어 있다.”

 

김기원 경기 남부취재본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