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꼰대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좀생이라고 해야 할까.

한 직장 상사가 밀려드는 업무에 고생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겠다며 만든 회식자리.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냐며 윗사람의 덕담이 오가고, 먹고 싶은 거 실컷 시키라는 멘트가 위로부터 흘러나온다. 다들 먹고 싶은 걸 선택하겠다며 메뉴판을 쭉쭉 훑어 내려가는데 바로 그때 윗사람의 한마디가 들려온다. '난 그냥 보통 짜장.'

이날 상차림은 어땠을까. 윗사람의 분위기를 살펴 맞춘 짜장 혹은 조금 용기를 낸 짬뽕이 전부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당초 모임 취지와는 달라진 셈이다.

언제 이야기냐며 다 지나간 옛 유머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렇게 옛날 이야기일까.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 한창 핫한 재난지원금도 그 한 예다.

정부가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를 살리고 어려움에 처한 국민들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1인가구 40만원, 2인가구 60만원, 3인가구 80만원, 4인이상가구 100만원씩이다.

지난 11일 신청을 시작으로 재난지원금이 카드 등에 꽂히면서 우리 생활 속에서 큰 힘이 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코로나19로 막힌 지갑에 목돈이 들어왔다며 재난지원금 활용 인증샷도 속속 올리고 있다.

그러나 재난지원금을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윗사람 눈치 보기다.

대통령을 시작으로 여야 정치인은 물론 광역단체장, 교육감 등 주요 인사들이 잇따라 기부를 선언했다. 여기에 경제부총리를 시작으로 5대 그룹까지 지원금 기부가 계속되고 있다. 일부 민간기업들의 경우 전 직원의 재난지원금을 기부하고 차후 회사가 이를 보조해 주기로 한 곳도 있단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기부인지 헷갈리는 대목이다.

이렇다 보니 형편상 재난지원금이 필요하다 해도 기부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윗사람이 재난지원금을 기부한 조직 내 직원들은 맘 편히 지원금을 쓸 수 있을까. 결국 전국적으로 강제기부라는 논란이 이어졌다.

특히 집 몇채씩은 물론이고 고액연봉과 업무추진비까지 주어지는 소위 윗분들의 기부와 달리 일반 직원들의 기부는 그 의미나 경제적 부담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40만~100만원이라는 돈의 체감 가치는 다르다.

또 윗분들은 자발적 기부라고, 강제적 기부는 없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기부는 자연스럽게 순수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밀려드는 업무로 고생한 직원들을 위한 회식자리라면 직원들이 먼저 메뉴를 고르게 한 뒤 주문하고 윗사람은 '짜장'이라고 외치면 그만이다. 그래야 당초 모임 취지에 맞는다. 하지만 지금은 재난지원금의 의미는 사라진 채 기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재난지원금은 기부하라고 주어진 돈이 아니다. 기부할 돈이라면 재난이라는 단어는 붙이지 말았어야 한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재난지원금을 기부 대신 적극 소비할 것을 주문했다. 경제방역차원에서 활발히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차원에서 재난지원금이 출발한 게 맞다.

통계청이 발표한 1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졌다. 1분기 소득 상위 20%(5분위)는 하위 20%(1분위)보다 5.41배 소득이 더 많았다. 5분위 가구 월평균 소득은 1분기 1115만8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3% 늘었지만 저소득층인 1분위 가구는 월평균 149만8000원으로 전년과 차이가 없다. 쓰고 싶어도 쓸 수 있는 돈이 없고 돈을 쓰지 않으면 지역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 악순환이 뻔하다.

하반기 경제 상황도 코로나19 여파로 녹록지 않을 분위기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0.5%로 전망했다. 지난해 한국경제 성장률은 가까스로 2%대를 유지했지만 호황은 없었다. 여기저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지 않았던가. 올 하반기 우리 경제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하기도 힘들다. 이제 곧 다가올 파고를 넘기 위해 절실했던 재난지원금의 의미를 지금이라도 되새겨야 한다. 지금은 미래를 대비해 써야 할 때다.

 

이은경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