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망신이다. 정의기억연대가 '조국 사건'에 이어 정의의 개념을 헷갈리게 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이 단체를 둘러싸고 제기된 기부금_정부보조금 부정사용 의혹은 10여건이다. 그 중심에는 윤미향(민주당 당선인) 정의기억연대 전 이사장이 있다.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이 받고 있는 혐의는 추접하기 짝이 없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1000원조차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하니 떡고물이 아니라 떡 전체를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정의기억연대 내에서조차 “윤미향이 대표가 된 뒤 할머니를 앞세워 돈벌이하는 단체가 됐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대개의 기부금 횡령사건의 경우 그래도 일정액은 대상자에게 주는 모양새를 취하는데 여기는 그것마저 과감하게 생략한 듯하다.

정의기억연대는 해명을 열심히 하고 있으나 부실하고 황당하다. 그 중 압권은 “기업이 자금 사용내역을 공개하는 것을 봤느냐”는 항변이다. 스스로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 수준임을 인정한 셈이 됐다. 그리고 기업은 기부받은 돈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윤미향은 “사퇴는 고려하지 않고 의정활동을 통해서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기부금 횡령과 의정활동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궁금하다. 또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된 심정”이라고 한 건 무언가. 여권이 조국 사건 때처럼 자신을 엄호해 달라는 주문 같은데 사안이 다르다. 조국은 여러 혐의가 있지만 주된 혐의는 표창장 위조이며, 작심하고 달려든 검찰에 의해 그야말로 '탈탈 털린' 측면이 있다.

하지만 윤미향이 받는 혐의는 파렴치범 수준이다. 위안부라는 역사적 피해자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세상물정에 어두운 고령의 할머니들을 이용했다면 횡령보다는 사기에 가깝다. 파렴치와 불법에도 정도가 있다. 어떻게 위안부 피해자들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할 생각이 드는지, 위안부 피해자 돕기운동에 성원을 보낸 국민들에 대한 예의인지 묻고 싶다.

정의기억연대 사건은 민주당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이낙연 전 총리는 “(사태를) 엄중하게 보고 있다. 당과 깊이 상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도 “공사가 구분되지 않은 것은 분명하고 워낙 여론이 좋지 않다”며 “당에서 그냥 기다리기에는 어려운 상태로 갈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해찬 대표는 “심각하게 검토할 부분은 아닌 것 같다”며 이 전 총리 입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례적인 일이다. 이 대표의 인식이 심각한 상태가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구실을 들어 사익을 취하고, 심지어 분수에 넘치는 사회적 권력을 행사하는 단체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들이 내세우는 주된 구호는 '정의'다. 정의기억연대는 아예 명칭에 '정의'를 넣었고 윤미향은 정의를 입에 달고 다녔다. '정의'는 함부로 거론하는 것이 아니다. 정의 실현에는 무한한 자기희생과 열정, 책임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스스로 정의롭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본 적이 없다. 후배 법관들의 재판에 관여해 물의를 빚은 신영철 대법관은 퇴임 인터뷰에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가 “정의를 거론할 자격조차 있느냐”는 여론의 핀잔을 들었다. 진짜 정의로운 사람은 스스로 정의롭다고 떠벌리지 않는다.

자신을 포장하거나 허물을 가리는 수단으로 정의를 들먹이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역설적이게도 정의를 자주 언급하면 정의는 의심받는다. 정의는 싸구려가 아니며, 조용히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정의와 공정을 그토록 자주 입에 담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망신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가 사회구성원의 행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혹은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쳐야 하는지로 정의로움은 결정된다”고 밝혔다.

또 플라톤은 “가장 나쁜 정의는 위장된 정의”라고 말했다. 정의를 자신의 장식용으로 여기면 되레 자신을 찔러오는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