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빈한 아내를 잘 모시며 살자
▲ 남편이 머리단장을 해 주는 처(妻)와 본마누라 머리끝에 올라선 첩(妾). /그림=소헌

“여보, 당신도 살 도리를 좀 하셔요. 우리도 남과 같이 살아 보아야지요.” 나는 T의 양산陽傘에 단단히 자극을 받은 아내의 말에 ‘그럴 만도 하다’는 동정심이 없지 아니하되 또한 불쾌한 생각을 억제키 어려웠다. (현진건 <빈처> 중에서)

 

‘마누라’는 중년이 넘은 아내를 허물없이 이르는 말이다. 조선 궁궐에서는 ‘마노라’라 하여 ‘마마’와 같이 쓰는 존칭어로 사용되다가 점차 ‘나이 든 부인’으로 의미가 변했다. _어떤 이에게는 토끼 같고, 어떤 이에게는 여우 같으며, 어떤 이에게는 곰 같은 마누라. 비 오는 날이면 남들은 ‘파전에 막걸리’가 생각난다는데, _필자는 언제부터인가 마누라가 먼저 떠오른다. 그만그만한 감정이 있는 이 땅의 중년 남편들에게 4자속담 몇 편을 바친다.

 

(1)빈처시하(貧妻侍下) 청빈한 아내를 잘 모시며 살자. 정성을 다하면 마누라가 감동할 것이니, 최선을 다한 후 아내의 명령을 기다리자. (2)고공우일(雇工虞_) 섣달에 들어온 머슴이 주인 마누라 속곳 걱정한다.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느라 자기 옷도 변변찮게 입는 형편에 주인집 부인의 속곳을 걱정한다는 뜻으로, 주제도 모르고 남 걱정하는 오지랖 넓은 사람을 놀리는 말이다. (3)함반처축(函飯妻逐) 함지 밥 보고 마누라 내쫓는다. 큰 함지박에다 밥을 퍼서 먹는 아내를 보고 밥 많이 먹어 쫓아낸다는데, 실제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잘못 판단하거나 행동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빈 [가난하다 / 부족하다]

①집에 있는 물건이라고는 조개(貝패) 한 쪽인데, 그나마 나누어(分분) 주었으니 가난할(貧빈) 수밖에.

②사욕을 버리고 재물(貝패)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分분) 삶을 청빈(淸貧)하다고 한다.

③예나 지금(今금)이나 돈(貝패)만 좇는 탐욕스런 글자인 貪(탐할 탐)과 주의하자.

 

처 [아내 / 아내로 삼다]

①봉건사회에서 妻(처)는 여자(女)의 머리끄덩이(十)를 손(_)으로 잡아채서 아내로 삼는다는 뜻이 강했다.

②하지만 요즈음은 난리가 난다. 아내(妻)의 머리(_두)에 남편이 손(_사)으로 꽃단장을 해주어야 하는 여자(女)다. 얼빠진 남편들이 이제야 철이 들었다.

 

첩 [첩 / 시앗 / 계집종]

①立(설 립)은 고문할 때 사용하는 송곳이나 끌을 뜻하는 辛(매울 신)의 생략형으로도 쓴다.

②妾(첩)은 적군의 포로들을 잡아 고문하고(立.辛) 여종(女)으로 부리다가 일부를 妾(첩)으로 삼은 것이다.

③妾(첩)은 본마누라(女)의 머리끝에 올라 선(立립) 여자다. 남편이 본마누라보다 더 떠받드는 여자인 셈이다.

 

(4)석불전석(石佛轉席) 시앗 싸움에는 돌부처도 얼굴을 돌린다. 아무리 점잖고 무던한 마누라도 남편이 첩을 두면 시기하고 증오함을 비유한 말이다. 그러니 아무런 감정이 없는 돌부처라 해도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벌떡 일어나서 경을 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5)노닥노닥 기워도 마누라 장옷(補結妻服보결처복)이라 했다. 지금은 낡았지만 본디 좋은 것이었고 아직도 그 가치가 남아 있다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공감이 깊어진다.

다들 그러하지 않았던가? 처가집 쇠말뚝 보고도 절했던 그런 거.

 

 

 

 

 

/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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