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방역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난 사실 중의 하나는 지역의 중요성과 가치다. 이번 코로나19 방역과정에서 만약에, 지역의 주도적인 역할이 없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끔찍한 상상은 아마도 현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코로나19의 확산 세가 가장 극심했던 대구지역에 중앙정부의 역량이 집중적으로 투입되었다고는 하지만 경기도와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와 그 단체장들의 강력한 의지가 이번 사태를 이렇듯 모범적으로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한마디로 방역주체로서 각 지자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입증하는 사례가 되기에 충분했다.

코로나19가 종료돼 가는 현 상황에서는 각 지자체에 부여된 지역경제 주체로서의 역할이 또한 크게 부각되는 상황이다. 지역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최근 사례가 또 하나 있다. 일거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시 화재사건이다. 이 사건은 전혀 다른 지점에서 지자체의 중요성을 대변한다. 이번 화재와 아주 유사한 사례는 12년 전에도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이천에서 일어났던 화재사건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은 현장에서 무리한 작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로 애꿎은 노동자들이 희생됐다. 여론은 지금처럼 그때도 `인재'라고 공감했고, 강력한 대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후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지엽적인 일이겠으나 이번 화재사건 와중에 이천시장이 현장에 있었느니 없었느니 하는 일로 한때 시끄러웠다. 사실과 관계없이 애꿎은 이천시장만 봉변을 당한 셈이다. 설사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 사항을 발견하더라도 관할 지자체가 할 일은 없다. 현행법상 근로감독관은 고용노동부와 그 소속기관에만 둘 수 있고, 근로감독관만이 산업재해 예방에 필요한 검사나 지도 등 사업장 전반의 노동환경을 개선할 권한이 있다.

지난해, 경기도권익센터는 사업장 안전문제 등 678건을 상담했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항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각종 위법사항을 발견해도 노동부에 전달해주는 역할이 지자체가 가진 권한의 전부다. 이처럼 현실에 맞지 않게 진부하고 낙후한 현 지방자치법의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도 결국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