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재난지원금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지원 대상을 놓고 정부와 여야가 엉켜 헷갈리는 싸움을 벌이더니 이제는 `기부' 문제로 번졌다. 긴급재난지원금을 3개월 내에 신청하지 않으면 자발적 기부로 간주한다고 한다. 일단 취지는 나쁘지 않다.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면서도 여당 주장에 밀려 전국민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한 만큼, 여유 있는 사람들이 기부하면 재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겪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보여준 연대와 배려의 힘이 경제위기 극복에도 작동할 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도 있다. 아직 기부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에서 실제 얼마나 많은 기부가 이뤄질지 관심이 모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 그렇듯 정부나 정치권에서 먼저 나서면 일이 시끄럽게 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상당부분 기부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 단초가 됐다. 처음에 대상이 아니었다가 논란 끝에 수혜자가 된 상위 30% 소득계층을 겨냥한 말처럼 비춰지자 “(기부하지 않는) 고소득자는 성숙하지 않은 시민이냐”는 반발이 나왔다.

여당 의원들이 잇따라 페이스북에 “저와 가족들은 지원금을 기부하기로 했다”는 글을 올린 것도 민망한 측면이 있다. 기부를 공개적으로 밝히면 좋게 받아들여 `장려'고, 나쁘게 말하면 `강요'다. 기부에 있어 제일 우선되는 법칙은 조용히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입이 근질근질한 보수야당은 “사실상 정부·여당이 주도하고 민간에 강요하는 관제 기부”라며 “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기업들은 `기부금+α'를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과대 포장했다.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부 형태로 하는 건 일종의 목적세로, 정부의 정치적 의도에 의한 설계”라고 직격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기부는 선의의 자발적 선택이다.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도 안될 일”이라며 “형편이 되는 만큼 뜻이 있는 만큼 참여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관제 기부'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나 정당 고위층은 가급적 `기부'라는 말을 입에 담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이 기부에 관한 생각을 밝힌 만큼, 나머지는 말할수록 납득보다는 오해의 소지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 어떤 형태로든 관 주도 캠페인으로 비춰져선 안되며, 순전하게 민간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자발성이 사라진 기부는 갈등과 반목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기부란 남모르게 하는 것이 생명이다. 그 대신 보상이 없지는 않다. 스스로 느끼는 보람과 자긍심이다. 기부를 하는 시민들이라면 이 정도 양식은 지니고 있다. 뭔가를 노리고 `영업성 기부'를 한다면 기부하고도 욕먹는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