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천 중구청 주변엔 전국 곳곳에서 올라온 관광버스가 줄을 이었다. 인천의 개항장 거리가 어떠했을지를 살펴보려고 많은 관광객이 찾았다. 요즘은 코로나19 사태로 뜸해지긴 했어도, 그만큼 인천의 개항장은 관심을 끄는 곳이다. `인천개항장문화지구'엔 19세기 말 인천 개항과 관련한 근대 역사문화재들을 보존하고 있다. 당시 모습을 복원해 방문하는 이들에게 크고작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1883년 일제에 의한 강제개항이긴 했어도, 인천은 개항 후 외국문물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도시로 유명했다. 서울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인천은 그야말로 서양의 최첨단 문물을 모아 건설한 곳이었다. 얼마나 화려했던지, 당시 국내 일부 학교에선 인천으로 수학여행을 올 정도였다. 그 무렵 인천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촌놈'으로 불렀다고 전해진다. 인천의 위상이 어땠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인천은 개항 이전엔 한적한 포구였다. 제물포항으로 더 알려진 인천엔 갯벌을 중심으로 오두막이 옹기종기 모인 어촌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제가 조선 침략의 일환으로 인천항을 개발하면서 확 달라졌다. 외국 상인들이 점점 인천으로 모여들어 자리를 잡아갔다.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거주할 수 있는 치외법권 지역, 즉 조계지도 생겨났다. 여러 나라 문화가 공존하는 국제도시로 번성한 까닭이다. 현 중구청(일제 때 인천부청) 일대엔 근대건축물이 즐비하고, 우리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곳도 수두룩했다. 관광객들은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간 조상들의 흔적을 보려고 인천을 찾는 듯하다.

아쉽게도 한국전쟁 때 이런 근대건축물은 대부분 소실됐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초토화한 인천에서 `화려했던' 시절을 찾긴 힘들다. 일제가 만든 `계획도시'이긴 했어도, 인천의 실상을 통해 열강들의 근대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일은 정말 애석하다. 아직 남은 건물은 중구청사를 비롯해 일본우선주식회사, 일본제58은행 인천지점, 답동성당, 홍예문,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 제물포구락부, 자유공원 등 소수다. 전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 대불호텔과 일본식 목조주택 등은 고증을 거쳐 복원한 건물이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모인 탐방객은 개항의 역사를 돌아보며 `장소성'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중구 개항장 문화재 야행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야간 관광상품으로 인정을 받았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는, 꼭 가봐야 할 `야간관광 100선'으로 뽑혔다. 2016년 인천의 가치 재창조 선도사업으로 시작된 문화재 야행은 2017년 최우수에 이어 이번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 명실상부한 수도권의 야간문화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오는 9월 탐방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야행에 `인천 최고·최초'의 문화재 체험도 곁들이면 어떨까 싶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