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자객 섭은낭' 중 은낭이 커튼들 사이로 계안을 주시하는 장면.

 

“거울을 본 난새는 슬피 울기 시작하더니, 밤새 춤을 추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화 `자객 섭은낭'(2015) 속 가성공주는 홀로 칠현금을 타며 남조 송나라 범태의 `난조시서(鸞鳥詩序)'에 나오는 난새 이야기를 읊조린다. 이 이야기는 가성공주와 섭은낭에게 동병상련을 불러일으키며 영화의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한다. 당나라 전기소설 `섭은낭전(聶隱娘傳)'을 각색한 이 영화는 서기(舒淇), 장첸(張震) 주연의 무협영화이다. `隱(숨을 은)'자에 깊이 매료되어 영화제작을 결심한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무협영화사를 새로 쓸 독창적인 무협영화를 선보이며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감독은 현란함, 화려함, 긴박감 등 기존 무협영화 요소들을 다 비워낸 후 `단순미, 절제미, 여백미'로 영화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내러티브, 화면, 공간, 의상 등 영화 전반에 대립과 공존의 미학이 관통하는데, 이는 도가사상의 `무위(無爲)'를 구현해낸 것이다. 무위는 인위적인 유위(有爲)에서 벗어나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자유스러운 경지를 말한다. 이는 세계가 유무, 선악, 상하, 시비 등 대립면의 공존을 통해 운행되고 있음을 체득함으로써, 즉 도(道)를 체득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대립과 공존의 미학으로 그려낸 무위의 세계

영화는 사람들에 의해 유위의 삶을 살던 은낭이 무위의 삶을 찾아가는 여정을 먹이 서서히 화선지에 스며들 듯 그려내었다. 사부가 암살을 지시하며 은낭에게 비수를 건네는 첫 장면은 나귀 두 마리와 대비를 이루며 유위와 무위의 두 세계를 보여준다. 흑백화면 속 은낭은 선악으로 구분된 이분법적 세계 속에서 사부의 명에 따라 악덕 관리를 제거하는 자객의 삶을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은낭은 잔혹한 고관이 자식에겐 자애로운 아버지임을 보고는 차마 그를 죽일 수 없어 뒤돌아선다. 암살 실패 후 은낭은 다양한 색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컬러화면 속으로 내던져진다. 사부의 명을 받들어 정혼자였던 위박 절도사 계안을 암살하러 고향으로 돌아온 은낭은 신분이 엄격히 구분되고 격식을 차리는 예(禮)를 기반으로 한 유위의 세계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점점 더 고독해진다. 어릴 때부터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파혼 당한 후 여도사에게 보내진 은낭의 삶은 왕궁에 갇혀 버린 난새와 황실의 안위를 위해 위박으로 시집온 가성공주의 불행한 삶과 겹쳐진다. 대들보 위에서, 나무 위에서, 커튼들 사이에서 계안을 주시하던 은낭은 군신, 부자, 부부 등 인간관계의 복잡다변성을 인식하면서 세상을 단순히 이분법적 사고로 판단할 수 없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결국 은낭은 사부의 명을 거역하고 계안 암살을 포기함으로써 대립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무위의 경지에 도달한다. 반면 사부는 운무가 서서히 산봉우리를 감싸면서 무위의 경지를 이루어내는 광경을 묵묵히 내려다보며 유위의 세계에 머물 뿐이다.

영화 속 농가는 노자가 그린 이상사회 `소국과민(小國寡民)'을 연상케 한다. 대자연의 품 안에서 삼삼오오 모여 한가로이 풀을 뜯는 염소들과 오손도손 모여 앉은 순박한 시골 사람들의 평화로운 정경은 무위의 세계를 실감하게 한다. 이 순간 거울 속 세상에 갇힌 난새 한 마리가 거울 밖으로 나와 끝도 보이지 않는 먼 곳을 향해 훨훨 날아간다.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