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4·15 총선 개표가 끝나자 SNS에 어느 집안 얘기가 떠돌았다. 시집간 딸이 아침 일찍 친정집에 전화를 해서는 “지금 초상집 분위긴가요”라고 떠본다. 약이 오른 친정 어머니가 “니들은 안그렇구”라고 응수한다. 보수 표밭 친정집과 '대깨(대가리가 깨져도) 정의당' 딸네 집간의 주거니 받거니다. 딸도 지지않고 대꾸한다. “그래도 우리는 울다가도 웃었지요.” 정의당은 안됐지만 어느 당의 폭망에 그나마 위안이 됐다는 얘기다. 그 어느 당이란, 이름부터가 모호한 '미래(에나 실현될) 통합당'이다.

▶싸움 구경, 불 구경이 최고라고 했다. 총선은 과거 중국?일본의 전국시대처럼 동시다발의 싸움판이다. 빅매치가 끝나니 촌철살인의 관전평이 쏟아진다. 결과를 보고 하는 얘기들이지만, 특히 통합당에 화살이 몰렸다. 그 중에서도 어느 정치학자의 '최후의 일격' 평이 압권이다. “민심은 수구 정당에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최후의 일격이란 이미 잔 펀치들을 여럿 날렸다는 뜻이다. 그래도 변할 줄을 모르니 “아예 당을 해체하라 명령한 것”이라 했다. 당을 허물고 다시 지으라는 주문은 그간에도 있어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간판 쪼가리만 바꿔 내걸곤 했다. 당을 해체하면 날아갈지도 모를 국고지원금이 아까웠을까. “통합당은 이번에 분리수거를 당했다.” “청년들만 죄다 험지로 내몰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식의 사후 평이지만 틀린 말은 없는 것 같다.

▶“아직도 보수가 다수라 착각한 때문”이라는 관전평도 있었다.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 이론이다. 한 쪽 골대 방향으로 바닥이 기울어져 있는 축구장을 상상해 보라. 한국 정치판에서는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의 한 전략통이 처음 제기했다. 75.8%의 투표율을 기록할 만큼 진보의 총자산을 결집했음에도 패배한 것은 이런 운동장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5년이 흘러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그 전략통은 다시 외친다. “그 운동장이 마침내 반대로 기울었다. 필승이다.”

▶일본 전국시대의 전설적인 무장 다케다 신겐은 '5할의 승리'를 최고로 쳤다. “50% 승리는 용기를 낳고, 70% 승리는 게으름을 낳고, 100% 승리는 교만을 낳기 때문이다.” 이번 민주당의 압승은 그래서 다시 보인다. 민주당은 2년전 지방선거에서도 '9할의 승리'를 거뒀다. 인간이 피해 갈 수 없다는 승자의 저주=교만을 넘은 셈이다. 아니면 순전히 운동장 덕분인가. 그러나 통합당은 까닭 모를 교만에 겨워 기운 운동장을 더 기울이느라 용을 쓴 꼴이 됐다. 그 당이 과연 30~40대가 이끄는 완전 새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지리멸렬한 야당도 국민의 재앙이다. 운동장은 늘 움직이게 마련이다. 하기야 2002월드컵의 스타 히딩크 감독도 처음엔 별명이 '5대 0' 이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