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개최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는 갓 취임한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행사였다. 유럽에서도 유명한 휴양지로 꼽히는 곳에서 IOC 총회가 열리게 된 것은 과거 올림픽 경기를 부활시킨 프랑스의 쿠베르탱이 자주 회의를 소집했던 인연으로 당시 서독의 IOC 위원으로 활약하던 빌리 다우메의 고향인 바덴·뷔텐베르그 주에 속해 있기 때문이었다. ▶1988년에 열리는 24회 올림픽 대회를 서울로 유치하기 위해 급조된 유치위원회의 멤버로 바덴바덴에 갔던 필자는 이미 일본의 나고야가 일찌감치 신청해 유치가 확정되다시피한 상황에서 한국은 올림픽 유치경쟁의 흥행을 위해 초청된 조연배우 같다는 현실을 간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 IOC 수장으로 취임한 사마란치 위원장의 수완과 일본의 오만함 그리고 우리 유치단의 '치열한' 득표활동으로 52대 27로 나고야를 꺾을 수 있었다. ▶IOC 위원들의 투표결과를 발표하던 사마란치 위원장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과연 분단국인 한국에서 올림픽 대회를 원만하게 치를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일본에게 경제협력자금을 요청하던 한국이 올림픽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을까 등등. 1972년 뮌헨 대회의 테러사건, 1976년 몬트리올의 적자 대회, 그리고 1980년 모스크바 대회의 서방국가 불참으로 반쪽 대회로 만신창이가 된 올림픽의 앞날에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사마란치 위원장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스포츠단체들과 언론들이 우려하던 88 서울 대회는 사양길로 접어들던 올림픽 대회를 세계 최상의 스포츠 이벤트로 등극시키는데 성공했다. 소련을 중심으로 공산국가들이 북한만 제외하고 모두 참가하게 되었고, TV 중계권을 따낸 미국의 NBC는 대박을 터트렸으며 올림픽 대회 스폰서를 맡았던 세계적 기업들도 PR효과에 만족했다. IOC도 그동안의 적자 올림픽에서 흑자로 전환되는 호기를 맞았다. ▶88 서울 대회를 계기로 올림픽 주가는 계속 상승곡선을 그렸다. 사마란치 위원장의 리더십과 흥행전략에 힘입은 바 컸고 TV 중계권과 메인 스폰서들이 내는 자금으로 IOC는 부자가 되었지만 개최 도시들은 지나친 시설비와 운영비 등으로 빚더미를 안게 되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이 우여곡절 끝에 연기되었다. 이시가와(石川)현 출신으로 수상을 지낸 럭비선수였던 모리 요시로(森喜朗) 조직위원장이 "올림픽 준비에 예산이 너무 많이 소요되지만 감동은 감소하고 있다"고 한 말이 실감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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