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천고(千古)에 떠도는 인의(仁義)의 노래
▲ 영화 '시황제 암살' 중 자객 형가가 청부살해 의뢰인을 만나는 장면.


"바람은 소슬하고 역수는 차가운데, 장사(壯士)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진시황을 암살하러 길을 떠나면서 자객 형가(荊軻)가 남긴 ‘역수가(易水歌)’는 200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바람과 함께 떠돌고 있다. 형가의 이 처연한 이야기는 공리(鞏?), 장펑이(張?毅) 주연의 영화 ‘시황제 암살’(1998)을 통해 스크린 위에 형상화되었다. 이 영화는 중국 전국시대 한(韓), 조(趙), 연(燕) 등 6국(國)을 멸하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하는 과정 중 진시황이 맞닥뜨린 형가의 암살 미수 사건을 다룬 천카이거 감독의 첫 역사영화이다.

천 감독은 역사 기록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기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여겨 인물 묘사부터 이 역사적 사건을 감독의 시각으로 새롭게 재해석할 필요성을 느꼈다. 특히 형가의 진왕 암살 결심의 동인(動因)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결국 천 감독의 손을 거친 끝에 진시황과 형가는 우리들 뇌리 속에 새겨진 기존의 상(相)과는 완전 다른 새로운 상(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인물을 통한 유교의 ‘인(仁)’사상 구현

한 남자가 검(劍)을 든 남자에게 정중하게 큰 절을 한다. 예의를 갖춘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보검 하나 때문에 일가족의 생명을 돈으로 거래하는 형가와 의뢰인의 무자비한 대화가 오간다. 이 오프닝 장면은 “사람이 인하지 않고서야 예가 다 무엇인가?(人而不仁, 如禮何)”라는 ‘논어’의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공자사상의 핵심인 ‘仁’은 의예지신(義禮智信)을 포괄하는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이다. 영화는 유교의 ‘仁’사상을 진왕과 형가 두 상반된 인물에 투영하여 두 인물의 엇갈린 변화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냉혹한 자객 형가는 맹인소녀의 자살을 계기로 피로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고 仁의 길로 나아간다. 반면에 백성구제를 명분으로 천하통일을 내세웠던 진왕은 진(秦) 왕족 혈통이 아닌 상국 여불위(呂不韋)의 아들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안 후 갈수록 仁의 길에서 멀어지며 잔혹한 6국 정벌에 나선다. 그의 잔혹함은 조나라 아이들을 생매장시키는 장면에서 극에 달하고 다시는 검을 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형가는 천하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다시 검을 든다. 이에 한때 진왕의 여인이었던 조희는 형가와 뜻을 같이한다. 형가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죽음의 길로 떠난 건 민족적 대의에 의해서도, 조희에 대한 사랑에 의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 즉 仁의 마음의 발로인 것이다. 비록 진왕 암살은 실패로 끝났지만, 형가는 끝까지 인의(仁義)와 신의(信義)를 잃지 않으며 대장부의 숭고한 품격을 지킨다. 반면에 이 위기의 순간 진왕은 그야말로 졸장부의 모습 그 자체다. 연나라 사신의 검을 반토막 낸 것도 안심이 안 되어 겉옷 안에 갑옷까지 단단히 갖춰 입은 그의 졸렬한 모습에 형가는 웃음으로 답할 뿐이다. 이에 진왕은 형가의 시체를 붙들고 그 웃음의 의미를 집요하게 되묻는다.

기원전 221년 진왕 영정(?政)은 무력으로 천하통일을 완성하여 중국 역사상 최초의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형가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을 통해 자기완성을 이룸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증명했다. “仁? 不仁? 우리는 어느 길로 나아갈 것인가?”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