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수는 공론화"…기관 단체 중립·느려도 '현명한 싸움'
영국당국 신중한 접근
추진-철회 극단적 선택 배제
'시민 창구' 활용 언제든 논의
지자체는 투명한 정보 공개
10년 걸려도 합리적 대안
'하운슬로' 사례 새 희망
1분 간격 항공기 소음공해
공항 확장 최적 긍정안 연구
일방적 결정 휘둘리지 않고
불필요한 오해·다툼 해소

 

▲ 영국 런던은 공항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룬 대표적인 도시로 꼽힌다. 항공수요 포화 등을 해결하기 위해 10여년 전부터 공항 확장 정책을 추진 중이다. 히드로공항 제2터미널(The Queen's Terminal) 활주로 확장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글로벌리제이션(세계화·Globalization)'의 핵심에는 공항이 있다.

이에 한국 뿐 아니라 많은 국가가 공항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사회적 논란도 동시에 겪어왔다.

영국이 공항을 추가로 놓으려는 시도도 문제에 직면했다.

최초 추진 뒤 14년 동안 양극의 합의가 좀처럼 이뤄지지 않으면서 갖가지 부작용도 우려된다.

그런데, 극심한 충돌은 없다.

현지 관련 단체는 "우리는 현명한 싸움을 한다"고 표현한다. 시민과 기관, 그리고 민-민 충돌이 걷잡을 수 없는 국내와 180도 다른 사정이다.



# '극과 극'을 좁힌 비법… '공론화'

영국은 2006년 수도 런던에 공항을 추가로 건설하겠다고 한 발표 이후 계속 골머리를 앓았다.

시민이 찬성과 반대로 갈라선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찬성 쪽은 ▲공항 이용편의 증진 ▲지역발전 ▲일자리 창출 등 효과를 내세우며 지지하고 나섰으나 ▲자연훼손 ▲기존 건물 철거 등을 걱정한 반대의견이 맞섰다.

업계와 노동단체가 추진에 힘을 보태자 환경단체와 자선단체가 저지했다. 정당·정계도 제각각 입장만 거듭하면서 이 사안은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자 영국당국은 보다 신중하게 접근했다. 추진·철회 등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동시에 다양한 의견을 받는 과정에 돌입했다.

형식적인 조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시민창구'가 대표적이다. 기관 등 공공과 전문가를 포함한 민간 영역이 언제든지 논의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마을 단위까지 퍼져있다. 시민들은 언제든지 해당 창구를 통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상담도 받을 수 있다.

공공기관은 찬·반 입장, 어느 부분도 부각시키지 않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한다.

무려 10년 넘게 이어진 절차다. '느리다'는 비판이 있지만, 덕분에 극단적인 갈등은 피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국은 '느려도 갈등은 없어야 한다'는 방침을 고집하고 있다.

공항을 둘러싼 대립에 영국당국이 꺼낸 이 같은 묘수를 풀어보면 결국 '공론화'다. 이해관계가 다른 여럿이 의논해서 문제를 잘라내고, 선택까지 이루는 방법이다. 각각의 자리에서 품었던 오해를 해소할 수 있고 대안도 도출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 '주민 지혜' 100% 걸고, 기관 '중립'

실제 지방자치단체와 시민 모두 의견이 엇갈렸던 '하운슬로(Hounslow)' 사례가 영국에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있는 상태다.

해당 마을은 당초 히드로공항의 발전으로 관광·교통·상업·일자리 등 다양한 수혜를 받았으나, '소음공해'로 인한 주민들의 불만이 많았다. 1분 간격으로 비행기가 날아다닐 정도다.

이에 정부가 공항 확장 방침을 밝힌 즉시, 주민은 찬·반으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논쟁이 붙었다.

그런데 여기서 하운슬로 구청 세력이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의견에 다양성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민심을 대변하는 지자체가 한쪽으로 기울어버리자, 부작용이 나타났다.

찬성 시민 사이에서 "내 의견을 무시했다"는 불만이 생겼고, 서로 미워하는 양극이 심화될 조짐이 있었다.

하지만 영국 당국의 공론화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지자체가 '중립 선언'을 하자,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됐다. 시민들이 지혜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영국 지방선거에서 선출된 스티브 커란 구의회의장(노동당·Labour Party)은 "우리 지역은 공항 확장에 대해 반대 입장은 분명하지만,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 인정한다"며 "찬·반 어디도 개입하지 않고 주민에게 맡기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현재 하운슬로는 '히드로 커뮤니티 참여 게시판(Heathrow community engagement board)'을 운영하고 있다. 마치 온라인 '청원게시판' 같은 역할이다. 여기는 인근 공항과 관련된 직장인, 사업자, 주민 모두가 의견을 달고 있다. 모든 공항 소식도 공지한다.

시민이 궁금한 사항에 대해 답변할 수 있는 담당자도 배치시켰다. 또 의견을 토대로 공항 확장 시 최적의 방안을 연구하기도 한다. '히드로 전략 기획단(Heathrow strategic planning group)'이라는 단체에서 이뤄진다.

예를 들어 한 시민이 토지수용이 싫다고 하면, 보상 확대 등 방안을 수립하는 역할이다. 만약 보다 많은 일자리를 원하는 시민이 있으면 그에 따른 방안도 모색한다.

토지이용·교통·환경·경제·개발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 찬성과 반대 측 모두 소속위원이 될 수 있다. 이런 공적인 과정을 거쳐 일종의 보고서를 만들고, 정부에 안건으로 올라가는 구조다.

덕분에 찬성과 반대 측 불필요한 오해와 다툼을 줄일 수 있었다. 구청에 설치된 창구 및 포럼 등 다 같이 모이는 자리에서 수시로 의견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특정단체의 일방적인 결정에 휘둘리지 않고, 시민들의 논의로 출발해 결정돼야 하는 이유다.

하운슬로 시민 A씨는 "나는 찬성하는데, 다른 의견과 부딪힌다. 하지만 싸우는 게 아니다. 대화를 거듭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며 "적절한 대안이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국 공항확장 정책을 반대하는 대표 세력인 환경단체 그린피스(Greenpeace)도 물리적 충돌 등은 최대한 피하고, 공론화를 통해 다투는 과정을 추구하고 있다.

그라함 톰슨 그린피스(Greenpeace) 항공분과 담당은 "우리는 대기오염 방지 등 차원에서 무조건 반대한다"면서 "다만 공항이 갖는 경제적 효과 등 객관적인 사실을 전부 부정하지 않는다. 공론의 장에서 합리적으로 싸운다"고 밝혔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
/통•번역= 김환희 ghksgml100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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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수요 대처' 중요성, 전문가에게 듣는다] 백남규 브루넬대학 교수 영국의 공항 확장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해온 현지 전문가들도 '항공수요 분산', '경제적 효과'에는 특별한 이견 없이 타당하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경기도 신공항도 이와 똑같은 내용으로 떠오르고 있다.국내 정책의 방향을 잡는데 영국의 우선 사례가 거론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백남규 영국 런던 브루넬대학 교수는 "히드로는 세계 상위권 공항이고 역사가 오래됐으나, 여객수요의 포화로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수요에 맞춘 활주로 확충 등 정책의 긍정적 효과는 다양하다"고 밝혔다.지난 1월 21일 영국 [경기도 신공항 '공론화'가 답이다] 4. 인구 800만 공항 6개도 부족한 영국 런던 "the airport is economic.(공항이 곧 경제다)"영국에 10년 넘도록 '공항 열풍'이 가라앉지 않는 건 한마디 주장 때문이다.런던 권역에 무려 6개의 공항을 뒀으면서, 히드로공항은 '유럽 제1위'로 도약한 시점.하지만 공항을 더 지으려는 영국의 욕심은 끝나지 않았다.'경제'로 시작해 '경제'로 끝나는 목적을 내세운다.주민들의 지지층도 꽤나 결집 돼 있다.새로운 공항으로 성장 활로를 모색하는 이 사례는 국내 대도시인 경기도와 비교 대상에 오르곤 했다."배워야 [경기도 신공항 '공론화'가 답이다] 3. '곧 포화'라는 국내 항공시장, 흐름은 경기도 신공항을 뒷받침하는 주장 중 하나가 '항공수요 포화'다.미래에 여객이용이 더욱 늘어나고 기존 대표 공항인 인천공항·김포공항이 공급을 수월히 할 수 없다는 말이다. # 세계, 한국 항공시장 '장밋빛 관측'발단은 정부의 예상부터 비롯됐다.국토교통부 '제5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2015~2019)'의 수요 및 공급 예측치를 보면 인천공항의 국제선 여객수요는 2035년 1억1255만명에 육박(연평균 4.3% 상승)할 것으로 분석됐다.그러나 인천공항의 여객처리능력은 한계가 있는 것으로 [경기도 신공항 '공론화'가 답이다] 2. 경기도 '항공메카' 현실성은 경기도는 대한민국의 중심지역이다.지표만 보아도 가늠할 수 있다.지난해 12월 기준 인구 1365만명으로 서울의 1.5배, 부산의 3.9배다.730만명에 달하는 경제활동인구도 서울 1.4배, 부산 4.2배다.1만1433개 벤처기업, 577만대 자동차 등등. 다양한 통계에서 대부분 '전국 1위'다.이는 항공업 관점에서 '블루오션(유망시장)'이 따로 없다.도에서 한 달 사이 만들어지는 여권의 수는 10만 건을 웃돈다.2018~2019년 사이 237만5161건이 발급됐다.하지만 유일하게 공항이 없는 지역이다.전 [경기도 신공항 '공론화'가 답이다] 1.끊임없는 '유치요구', 경기도 신공항의 부상 공항. 비행기로 나라의 안과 밖을 빠른 시간에 오가는 욕구가 커진 현대 들어 필요성도 거대해졌다. 지역단위의 '인프라(기반시설)'에도 빼놓을 수 없다.이런 가운데 최근 던져진 한 개의 화두가 수원, 화성, 성남 등 경기지역 곳곳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바로 '신공항'이다.인구는 물론 경제의 중심지에 공항이 들어선 뒤 발생할 파급력은 일자리 창출, 관광 활성화 등 상당한 '발전 동력'을 제공할 것으로 평가된다.하지만 결국 비용이 수반되고 이용객 확보, 주민 주거권 등에 대한 다각도의 검토가 [경기도 신공항 '공론화'가 답이다] 6. 공항 갈등 해법 '미디에이션' 세계적 흐름 공항 갈등의 해법으로 공론화를 도입하는 것은 전 세계의 추세이기도 하다.2018년 한국교통연구원이 국토교통부에 제출한 문건을 보면, 독일은 1997년 시작된 프랑크푸르트공항 확장사업(2차)에서 갈등비용을 종전대비 40억여원으로 절감했다.먼저 1965년부터 시작된 1차 확장사업에서 갈등비용은 3000억여원이 유발된 바 있다. 갈등기간은 과거 15년의 시간이 1.5년으로 줄었다. 10분의 1의 놀라운 성과다.이 사례는 세계에 큰 메시지를 전했는데, '공론화' 때문이다. 1차 사업 당시 불거진 갈등은 독일에 큰 상처를 낳았 [경기도 신공항, '공론화'가 답이다] 6. 공항 확장 첨예한 대립, 이렇게 풀자 국내 '공항성장'을 둔 논의는 한계에 봉착했다.수요에 안정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예측에도 공항을 건설하거나 넓히는 구상은 그저 '악(惡)'이 되어가고 있다.신중한 검토 없이, 시민과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정치·정책적으로 결정내린 과정이 큰 원인이다.'경기남부 신공항'은 다르게 다뤄야 하는 이유다.'왜 추진하는지' 단계부터 공론하는 방향성이 시급하다.이미 실험대까지 올린 영국의 당사자, 사례를 관찰한 한국 쪽 전문가의 공통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티브 커란 하운슬로구의회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