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가 갓 집권한 1993년 초, 처음으로 공직자 재산 공개가 시행됐다. 신문사 사회부의 말단 기자들이 덩달아 바빠졌다. 거물 정치인, 고위 관료들의 재산을 발로 뛰며 검증해야 해서다. 경찰 출입 막내 기자들은 하루 종일 동사무소나 등기소를 전전했다. 호적등본, 등기부등본을 떼다가 날이 저물었다. 재산 공개의 후폭풍은 엄청났다. 구린내가 나는 재산 실태들이 대서특필되고 여론이 들끓었다. 전·현직 국회의장들부터 물러나야 했다.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떠나며 남긴 '토사구팽(兎死狗烹)'이 두고두고 회자됐다. 한해 전 대통령 선거 때 'YS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그러나 선거에 이기자마자 선거 공신들이 줄줄이 쫓겨나는 결과가 된 것이다. 그것도 당시 여당의 '박힌 돌'이던 민정계가 '굴러온 돌' YS에게 팽(烹)을 당한 사변이었다.

▶토사구팽은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의 상장군 범려가 원저작자다. 월왕 구천을 도와 숙적 오나라를 정복하고도 그는 월나라를 떠난다. 월왕 구천이 '고난을 함께 할 수는 있지만 영화를 함께 누릴 수는 없는' 인물임을 간파한 것이다. 초야에 은거한 범려는 월나라 승상 문종에게 편지를 보낸다.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광에 처박히고,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그러나 문종은 '설마'하다가 반역죄를 뒤집어 쓰고 자결한다. 토사구팽은 300년 후 한나라의 장군 한신에게서도 재현된다. 한나라 고조 유방을 도와 중원을 통일한 개국공신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것을 의심하는 유방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천하가 평정되고 나니 나도 마땅히 팽 당하는구나"라는 말을 남겼다.

▶스포츠든 선거든, 빅매치에는 '관전 포인트'가 있다.이번 4·15 총선에서는 의정부 갑 선거구가 주목된다. '겉은 장비, 속은 조조'라는 문희상 국회의장이 6선을 한 곳이다. 지난 년말 국회는 공수처 설치법, 선거법 개정 등으로 시끄러웠다. 이 과정에서 무당적의 문 의장이 너무 범여권 '4+1' 편을 든다는 말을 들었다. 야당은 대놓고 "공을 세워 아들에게 지역구를 세습하려는 거냐"고 했다.

▶그러나 법안 통과 잉크도 마르기 전 민주당에서 먼저 '자녀공천 불가'론이 제기됐다. 바로 '문희상 토사구팽' 등이 검색어에 올랐다. 민주당은 의정부 갑에 청년 소방관을 전략공천했다. 의정부 갑 당직자 400명이 이에 반발해 탈당했다. 손바닥만한 지역구에 당직자 400명이면 골목골목 표단속도 가능한 수준이다. 마침내 지난 주 문 의장의 아들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해 버렸다. 한창 삶고 있던 사냥개가 솥뚜껑을 밀고 탈출한 셈이다. 구팽출부(狗烹出釜)라고 해야 하나.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