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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석의 지구촌 - 923회] 폐가처럼 된 우체국 건물
[신용석의 지구촌 - 923회] 폐가처럼 된 우체국 건물
  • 인천일보
  • 승인 2020.03.19 20:24
  • 수정 2020.03.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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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우편업무가 시작된 것은 18841118일 인천(제물포)과 서울 간이었다. 개화에 앞장섰던 홍영식(洪英植)에 의해서 두 종류의 문위(文位)우표를 일본에서 인쇄해 와서 업무를 시작했으나 같은 해 124일 축하연을 계기로 갑신정변이 일어나 모처럼 시작된 신식우편이 정지되고 말았다. 16일 동안 취급된 우편물이 극소수여서 우표수집가들에게는 당시 사용된 우표가 거액으로 평가되는데 인천 개항박물관은 인천우체사의 소인이 찍힌 귀중한 우표 2매를 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우편제도는 그 후 10년의 공백 기간을 거쳐 1895년에 재개되었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광복 직후 혼란기에도 체신부에서 관할하던 우편업무는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되었고 6·25전쟁 중에도 우편물 접수와 배달이 계속되기도 했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전방부대의 장병들이 군사우편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외국과도 우편물 교환이 가능했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우표수집을 시작했던 필자는 기념우표가 나올 때마다 우체국을 찾았고 외국의 수집가들과도 우표교환을 하면서 국제우편을 자주 이용했다. 10여년까지만 해도 연말연시 때 연하장이나 혼사가 있을 때는 청첩장을 대부분 우편으로 보내서 우체국 창구가 한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통한 소통이 일반화되고 인터넷으로 유통혁명이 현실화되면서 200년 가까이 인류의 소통문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우편제도는 급격한 사양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미국은 일찍이 중앙정부의 부서로 있던 우편부서를 1971년 우편공사로 전환시켰지만 아직도 65만 명을 고용하는 거대한 조직이다. 네덜란드, 독일, 영국 등 유럽 주요 국가들도 대부분 우편업무를 민영화했으며 일본에서도 예금고가 제일 많은 우편저금까지 포함시켜 민영화를 단행하여 경영을 다각화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동우체국이라고 불리던 신포동 입구 사거리에 있는 인천우체국 건물은 유형문화재로 등록된 건물인데다가 인천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우편업무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비록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건물이지만 최초의 우편제도가 실시된 인천에 있는 상징적인 곳이 지난해부터 문을 닫고 폐가처럼 되어 있으나 인천시는 물론 중구청에서도 문화재의 복원과 활용 대책을 확정 짓지 못하고 있다. 인구 300만의 국제도시를 지향하는 곳답게 조속히 활용 방안을 마련하여 추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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