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대한민국 영화사 101년을 뒤흔든 일대의 사건이 일어났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하며 오스카 역사상 전례 없는 기록을 남겼다.

국민은 코로나19 확산 우려에도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식을 기뻐했다. 곧 한반도는 '봉준호 열풍'이 불어닥쳤다. 극장가에서 막을 내렸던 기생충이 다시 상영되는가 하면 봉준호 감독의 지난 작품들을 재조명하는 방영프로그램이 대거 편성됐다.

또 봉준호 감독의 일대기를 주제로 한 위인전기도 출간됐다. 아카데미 4관왕의 쾌거로 얻은 봉준호 열풍은 정치권에서 더 극명하게 나타났다. 4·15 총선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예비후보들은 '봉준호 효과'에 편승한 '기생충' 공약을 봇물 터지듯 쏟아냈다.

더불어민주당은 수상 직후인 12일, 프랑스의 문화예술인 고용보험에서 착안한 한국형 '엥떼르미땅'의 도입을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민주당에서 내건 한국형 엥떼르미땅은 까다로운 자격 요건으로 오히려 사회보장 범위를 축소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한국 예술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부적합한 제도라는 점에서 문화 예술계로부터 지탄받았다.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도 이 기회를 놓칠세라 통합당의 전통적 강세 지역으로 통하는 대구에서 봉 감독이 대구 태생인 점을 활용한 공약들을 내놓았다.

통합당은 봉준호 영화 거리 조성과 생가터 복원, 기념관, 동상 건립 등 지연을 강조한 전방위적인 '봉준호 공약'을 내세우며 지지를 호소했다.

낯 뜨거운 정치권의 공약 경쟁은 봉 감독의 귀에도 전해졌다.
지난 19일 봉 감독은 입국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 같은 이야기는 죽은 뒤에나 해 주었으면 좋겠다"며 선을 그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수당 집권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르내렸던 봉 감독으로선 마냥 달갑기만 한 제안은 아니었을 터. 그저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심정으로 웃고 넘겼다는 봉 감독의 말이 인상 깊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5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때가 기회다 싶어 너도나도 '숟가락 얹기' 식으로 내놓은 일회성 공약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주는 메시지나 영화에서도 누차 지적한 한국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선 안중에도 없다.

오직 '봉준호 특수'를 노리는 데 혈안이 된 이들의 작태가 마치 봉 감독의 영화(榮華)에 기생하려는 이 시대의 '기생충'처럼 느껴진다.

박혜림 경기본사 문화기획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