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130년 역사·방향성 짚어
▲ 김해경 지음, 정은문고, 344쪽, 2만2000원

우리나라 근대공원이 130여년 전 태어날 때부터 성장통을 겪고 도시문화로 자리잡는 현상 등 공원에 대한 역사와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 나왔다.

'근대'와 함께 유입된 공원의 첫 등장은 1888년 'public garden'이란 표기로 시작한다. 인천의 각국조계지 내 각 영사관이 공유한 공공 정원 개념이었다. 종로 한복판 원각사지십층석탑이 있는 공간에는 민가를 헐고 담장을 둘러서 경성 최초의 공원인 파고다공원을 조성했다. 서대문 밖에는 독립협회가 독립문과 독립공원을 구축했으나 이때만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공원으로서의 기능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은 드물었다.

근대공원의 확장은 당대의 도시문화를 만들었다. 공원은 인공 자연을 향유하는 대중 장소였으며, 공공과 상업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모던걸과 모던보이가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하는 데이트 장소였으며, '룸펜'으로 불리는 실업자들과 노인이 머무는 소외공간이기도 했다. 성인은 끽다점에서 맥주를 마셨지만 한편에는 아동을 위한 공간이 들어섰다.

이 책은 일상용어처럼 사용되나 정작 '공원'이란 말은 언제부터 썼는지, 언제부터 활용됐는지, 한문과 영어로는 어떻게 썼는지 하는 의문에서부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일제강점기 근대공원의 조성과 성장하는 배경에는 권력집단의 이해가 반영되는 아픔이 있다고 지적한다. 조선시대 관공서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던 지역에 조선의 흔적을 지우고 장충단공원, 사직단공원, 효창원공원, 훈련원공원이 조성됐다.

특히 대한제국 군인의 추모 공간이었던 장충단공원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박문사가 들어섰고, 파고다공원에는 재정고문 메가타 다네타로 동상이 세워졌다. 남산에는 일본인의 종교와 맞닿은 신사공원이 들어섰고, 각 지역에 신사가 늘어가는 만큼 그 신사는 공원으로 변모했다.

한국 근대공원의 역사는 짧지 않지만 한국의 공원에는 나이테가 없다. 리모델링이라는 과거를 지우는 행위와 그 사이에 남겨 있는 시간 층위를 무시하는 복원과의 충돌이 동시대에 있다. 이념 동상이 공원의 맥락과 상관없이 들어오고, 뜬금없는 기념비는 기억을 강요한다. 아직도 공원에는 노인들이 방황하고 있다.

지은이는 "공원에 대한 시간적 층위를 '두텁게 하기'가 선행돼야 하며 미래의 근대공원 방향성은 문화재로의 보존, 성역화, 근린공원 등 혼재된 정체성 중 하나의 장소성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방식은 아니다"라며 "근대공원에 대한 기억과 흔적을 되살리는 다양한 기법과 방법 그리고 이해 집단의 다양한 논쟁이 필요한 시점은 지금이다"라고 강조한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