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눈앞에서 적용할…부엌살림까지 자세히
▲ 전공지(展功志) 5권 '공원치족(空院置簇)' 삽화: 옷감과 직조 염색 등 피복 재료를 다루었다. <br>즉 부녀자의 일인 길쌈에 관한 일을 정리이다. <br>뽕나무 재배를 비롯해 옷감을 만드는 방법, 염색하는 방법 등이다. <br>​​​​​​​'공원치족'은 빈 방에 누에섶을 두는 방법을 그린 삽화이다.
▲ 전공지(展功志) 5권 '공원치족(空院置簇)' 삽화: 옷감과 직조 염색 등 피복 재료를 다루었다.
즉 부녀자의 일인 길쌈에 관한 일을 정리이다.
뽕나무 재배를 비롯해 옷감을 만드는 방법, 염색하는 방법 등이다.
'공원치족'은 빈 방에 누에섶을 두는 방법을 그린 삽화이다.

 


선생은 '예언(例言)'에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에는 출처(出處)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출'이란 관리가 되어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에게 은택을 베푸는 것으로 임무를 삼는다. '처'는 향촌에 살면서 힘써 먹을 것을 해결하고 뜻을 기르는 것도 그 임무이다( 一凡人之處世 有出處二道 出則濟世澤民 其務也 處則食力養志 亦其務也)"라 하였다. 선생은 물론 출처 두 가지를 다하였지만 <임원경제지>를 편찬한 이유는 '처'에 더 있다. 그래 선생은 "임원(林園)으로써 표제를 삼은 것은 사관(仕官)이 세상을 구제하는 방책이 아님을 분명히 하는 까닭"(以林園標之 所以明非仕宦濟世之術也)이라고 밝혔다. <임원경제지>에 대해 설명한 '예언' 중 한 부분을 더 본다.

"밭 갈고 베 짜고 씨 뿌리고 나무 심는 기술과 요리하고 목축하고 사냥하는 방법은 모두 시골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다. 그리고 기후를 점쳐 농사에 힘쓰고 집터를 살펴 살 곳을 정하는 것 및 재산을 늘려 생계를 꾸리고 기물을 갖추어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일 또한 마땅히 있어야 할 것들이다. 그래서 지금 그와 관련된 글들을 수집하는 바이다. 자기 힘으로 먹고사는 일이 진실로 갖추어졌다면 시골에서 살면서 맑게 마음을 닦는 선비로서 어찌 다만 구복(口腹)을 채우기 위한 일만 하겠는가? 화훼 가꾸는 법을 익히고 고상한 취미생활로 교양을 쌓는 것으로부터 섭생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만둘 수 없는 것들이다. 의약(醫藥)으로 말하면 궁벽한 시골에서 위급할 때를 대비하는 데 유용하고 길흉의 예절은 대략 강구하여 행해야 할 것들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글들 또한 아울러 수집했다."

또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의 문헌을 많이 끌어온 데 대한 선생의 변이기도 하지만 이 글을 쓰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 <임원경제지> 저술 원리 및 범례이기도 하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토양이 각기 다르고 습속도 같지 않다. 그러므로 생활의 필요에 따라 하는 것이 과거와 현재의 격차가 있고 인간이 살아가는 데 사는 땅이 각기 다르고 관습과 풍속이 같지 않다. 그러므로 시행하는 일이나 필요한 물건은 모두 과거와 현재의 차이가 있고 나라 안과 나라 밖의 구분이 있게 된다. 그러니 중국에서 필요한 것을 우리나라에서 시행한다면 어찌 장애가 없겠는가? 이 책은 우리나라를 위해 나왔다. 그래서 자료를 모을 때 당장 눈앞에서 적용할 방법만 가려 뽑았다. 그러하지 않은 것은 취하지 않았다. 또 좋은 제도가 있어서 지금 살펴보고 행할 만한 것인데도 우리가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도 모두 상세히 적어 놓았으니 뒤에 오는 사람들이 이들을 본받아 행하기 바란다."

선생은 "이 책은 오로지 우리나라를 위해 나왔다"고 단언하였다. 중국과 다름을 분명히 한 것은 물론 "당장 눈앞에서 적용할 방법만 가려 뽑았다"고 하였다.

 

이 책은 본리지~16부분으로 나뉘어 있어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또는 <임원경제십육지>라고도 부른다. 이제 한 '지(志)'씩 설명해보겠다. '지'의 기본적인 구성방식은 강(綱)-대목(大目)-세조(細條)-표제(標題) 순이다. 예를 들자면 '본리지'에 '대목: 전제/세조: 경무결부/표제'로 되어있다. 또 선생은 자신의 논평으로 군데군데 '안(案)', '안(按)'을 서두를 삼아 붙여 놓았으며 각 지마다 체제구성과 대략의 내용을 소개하는 '인(引)'을 작성해 놓았다.

이제 16지 중, 흥미로운 몇 지만 본다.
정조지(鼎俎志) 7권: 음식 요리백과사전이다. '정'은 솥이고 '조'는 부엌이다. 11개 부문 2303항목을 통해 당시 백성의 건강한 식생활을 꾀했다. 선생이 이렇듯 부엌살림까지 소상히 적어 놓을 수 있었던 건 벼슬을 떠난 17년 동안 직접 농사를 지어 어머니를 모셔서이다. 어머니가 하루는 선생의 손에 굳은살이 박인 것을 보고 "평생 호미 한 번 잡아 본 적 없는 서울 선비들은 천하의 도둑놈들이다. 나는 굳은살 투성이 네 손이 자랑스럽다"라는 글도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가수저라(加須底羅)'라는 음식이다. 이것은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에서 인용을 하였는데 지금의 카스테라인 듯하다. '밀가루, 설탕, 달걀노른자를 이용하여 노구솥에서 익혀서 만든다'하였다. 포르투갈 말인 Castella를 한자를 빌어 음차하였다. 이 가수저라에 대한 기록은 이덕무가 쓴 <청장관전서> 제65권 '청령국지(蜻蛉國志)'2 '물산(物産)'편에도 보인다. 이덕무는 "정한 밀가루 한 되와 백설탕 두 근을 달걀 여덟 개로 반죽하여 구리 냄비에 담아 숯불로 색이 노랗도록 익히되 대바늘로 구멍을 뚫어 불기운이 속까지 들어가게 하여 만들어 꺼내서 잘라 먹는데, 이것이 가장 상품이다"라는 레시피도 적어 놓았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