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선거때마다 "왜 출마했지" 싶은 후보들이 늘 있었다.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 것이 '카이저 수염'의 진복기 후보다. 1971년 제7대 대선에 정의당 후보로 출마해 당당히 3위를 차지했다. 그것도 당시 박정희 대 김대중간 용호상박의 와중에서다. 이후에도 대선때마다 '출마 선언'까지는 한 덕분에 '영원한 대선 후보'로도 기억된다. 당시 정치부 기자들이 정의당 중앙당 주소를 짚어 갔더니 수유리 산골짜기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정의당이 5공의 민주정의당과 현 정의당을 통해 이름을 부지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1997·2007년 대선에는 공화당을 내세운 허경영씨가 등장했다. 황당하다 할 만큼의 특이한 공약과 기이한 경력 등으로 대학가에 '허 본좌 신드롬'이 일기도 했다. 본래 '본좌'는 해당 분야의 최고 고수를 뜻하지만 요즘은 스스로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신혼부부 1억원, 출산하면 3000만원씩 수당 지급. 월 50만원 노인 건국수당 지급. 2007년 대선에서 그가 내건 공약들이다. 그때는 다들 허무맹랑한 공약이라며 헛웃음만 보냈다. 그런데 십수년이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닌 것이 됐다. 그의 공약들 상당수가 이미 실현돼 있지 않은가. "내 공약 뜯어가 흉내만 내고 있다"고 큰 소리칠 만 하다.

▶그 '허 본좌'가 다시 돌아왔다. 이번 총선에서는 국가혁명배당금당을 들고 나왔다. 33가지 공약 맨 앞에 1인당 150만원씩의 국민 배당금 지급을 내세웠다. 퍼주기 복지가 아니라 국가에 투자(세금)한 국민들에 대한 응분의 배당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예사롭지가 않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총선 예비후보(883명)를 배출한 것이다. 원내 제1·2당의 예비후보를 다 합쳐야 국가혁명배당금당을 따라갈 정도다. 경기도와 인천에서도 절반 가까운 예비후보가 배당금당 소속이다. 안양의 한 선거구에는 이 당 예비후보가 7명이나 된다. 회사원, 가정주부, 자영업자, 요양보호사, 아파트경비원, 보험설계사 등 정치에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이다. 더러는 의사, 약사 등 전문직들도 보인다.

▶이른바 '허경영 정치공약'은 국민들 가려운 곳을 파고든다. 국회의원 100명으로 축소 및 무보수 명예직화, 지방선거 폐지 등이다. 미국 상원이 고작 100명인데 무슨 300명이냐는 것이다. 이같은 정치혁명만으로도 3~4조원을 배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허 본좌' 유튜브가 조회수 1억을 돌파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국민들이 기성 정치에 허탈해 한 탓이라고 분석한다. 또 누가 알겠는가. 다시 십수년 후에는 그의 '명예직 국회의원 100명' 공약도 어느새 현실이 돼 있을지를.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