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겨울날 500㎞ 걸어 6·25참전한 소년들을 아십니까

당시 자원입대 이경종옹의 아들
20년간 전국 학도병 찾아다니며
모은 녹취·사진·촬영 자료 전시
▲ 인천학생6·25참전관 '추모의 방'에는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10대 학생의용대원에 대한 소개가 벽면 가득 걸려있다. 그 아래엔 전쟁 당시 운용되었던 군용장비 모형들도 전시돼있다.

 

 

▲ 의용대와 관련된 각종 자료들이 모아둔 '기억의 방'.
▲ 의용대와 관련된 각종 자료들이 모아둔 '기억의 방'.

 

▲ 인천학생의용대 명단을 수기 작성한 자료.
▲ 인천학생의용대 명단을 수기 작성한 자료.

 

▲ 인천학생 6·25참전관 옆에 신축 중인 이경종 기록관.
▲ 인천학생 6·25참전관 옆에 신축 중인 이경종 기록관.

 

▲ 이규원 관장이 운영 중인 인천학생 6·25참전관과 치과.
▲ 이규원 관장이 운영 중인 인천학생 6·25참전관과 치과.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천의 학생들은 '전인천학생의용대'를 조직했다. 치안 유지 활동을 벌였던 인천 학생들은 중공군이 개입하자 그 해 겨울에 부산을 향해 떠났다. 500㎞ 거리를 걸어서 부산에 도착한 학생들은 1951년 자원입대를 통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모두 10대에 불과한 어린 소년들로, 참전자 수가 2000여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208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시린 겨울날, 20일간 발이 부르트도록 행군해 전쟁터로 가 희생당한 인천학도병들에 대해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인천에선 개인이 설립한 '인천학생 6·25참전관'이 유일하게 이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전시하며 여전히 이들을 기억하고 있다.

'인천학생 6·25참전관'은 인천학생의용대원 중 한 명인 이경종옹의 아들 이규원씨가 설립했다. 아버지를 포함한 참전 학생들의 나라를 위한 희생정신과 얼을 계승하기 위해 만든 이 참전관엔 인천학생의용대와 관련해 방대한 자료와 기록들이 전시돼 있다.

#그때 그 소년들을 추모하고 추억하며 기억합니다

'인천학생 6·25참전관'은 중구 우현로에 위치하고 있다. 2004년 6월25일 신포동에서 개관했으며 2015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참전관은 치과 건물과 함께 쓰고 있다. 이규원 참전관 설립자가 치과의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참전관은 크게 ▲추모의 방 ▲추억의 방 ▲기억의 방 등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눠져 있다.
'추모의 방'은 전사자들과 관련돼 있다. 학생 신분으로 참전했다가 유명을 달리한 208명의 어린 넋들을 기리고자 마련됐다.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이들의 정보를 수집해 하나하나 전시해 둔 점이 특징이다.

'추억의 방'은 생존자들의 업적을 나열한 공간이다. '인천학생 6·25참전관' 관장의 아버지인 이경종옹 역시 생존자 중의 하나다. 이경종옹은 1951년 6월7일 공립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현 인천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당시 나이 16세 때 자원 입대했다.

'기억의 방'은 인천 학도 의용군과 관련된 각종 자료들이 모여있다. 이규원 관장은 이경종옹과 함께 20년 넘는 세월동안 당사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찾아다니며 만나고 녹취와 사진 촬영 등을 통해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이 밖에 이규원 관장은 이들에 대한 역사서도 편찬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인천 학생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를 조직, 인천 학도병들의 참전 역사와 전사자들을 책으로 펴냈다. 지금까지 4권을 출간했다.
개인 전시관이긴 하지만 유물의 양과 전문성이 인정돼 최근 한국박물관협의회에 정식 박물관으로 등록됐다. 자동으로 인천박물관협의회 소속이 됐다.

'인천학생 6·25참전관'은 박물관 증축과 신축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박물관 위치에서 옆 건물에 '6·25참전 인천소년병 이경종 기록관'을 신축해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이규원 인천학생6·25참전관 관장

 

"처음엔 아버지, 나중엔 역사 위해 운영 포기 못했죠"

 

▲ 이규원 인천학생6·25참전관 관장
▲ 이규원 인천학생6·25참전관 관장

 

"이걸 왜 하느냐고요?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잖아요."
이규원 관장이 신포동 한 켠에 '인천학생 6·25참전관'을 시작한지 올해로 16년이 된다. 특별한 수익사업 없이 본인의 치과 운영 수입으로 참전관을 유지하는 형편이지만 그의 박물관은 세월이 지날수록 오히려 충실해져 간다.

"처음엔 함께 고생한 전우들을 잊지 못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하나 둘씩 자료를 모으다가 시작한 일이에요. 하지만 그 자료들에는 잊어서는 안 되고 꼭 기억해야만 하는 우리의 소중한 역사가 자리하고 있었죠. 그렇게 조금씩 유물이 늘다보니 전시관까지 운영하게 됐어요."

이 관장과 그의 아버지 이경종옹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인천학생의용대를 물어물어 찾아다녔다.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참전 상황과 사연을 정리하기 위해 구술 기록을 했다. 여기에 쓰인 녹음 테이프만 해도 수 백 개가 넘는다.

또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사진자료와 물품들을 어렵게 구했다.
현재 이 자료들의 디지털로 전환하는 작업을 거치고 있지만 그 전까지 이 기록들은 이경종 부자의 손때가 가득한 아날로그 데이터로 남아있다.

"아버지는 개관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후 4시가 되면 참전관을 찾고 있어요. 바로 전우들을 보기 위해서죠."

이규원 관장은 참전관 운영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도 사회 공헌과 헌신을 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6·25참전용사에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장애인에게는 무료 치과 치료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같은 치과 의사가 된 딸 이근아씨와 함께 인천 고액기부자 모임인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글·사진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공동기획 인천일보·인천광역시박물관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