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하루 전 인천일보 사회면 톱이 재밌다. 「대신 '지글지글' … 명절음식 배달 왔습니다.」인천에서도 차례상 대행 서비스가 갈수록 성행한다는 소식이다. 그 주방을 들여다보니 한켠에선 전만 부치고 그 뒤편의 직원들은 조기찜 전문이다. 그 회사내에서는 '전 팀장', '조기찜 팀장' 등으로 불릴 것이다. 어제 오늘의 세태 변화는 아니지만 머지않아 '대세'로 자리잡을 모양이다. 최근 시장이 뜨거워지고 있는 새벽 배송 업체들도 가세했다고 한다. 이제는 가성비 경쟁력까지 갖춰 시장을 키우는 단계로 올라섰다. 대량 조리 덕분에 가격이 저렴하고 숙달된 조리사가 음식 맛까지 어느 정도 지켜주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며느리들 보다는 아들들이 차례상 주문을 해 오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지난 설을 앞두고서 "결혼 40년 만에 차례상 주문했어요" 등의 기사가 온라인에 회자됐다. 명절 끝이면 '손목터널증후군'을 앓는다는 한 60대 주부 얘기다. 한편으론 "차례상 주문하면 더 싸요"와 "돈보다 정성이 먼저지"라는 고부간 논쟁도 벌어졌다. 한민족의 수천년 명절 풍속도가 도도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명절 연휴의 고속도로 교통량에서도 읽혀진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연휴 초 하행선은 주차장을 방불케 했고 상행선은 싱싱 달렸다. 연휴 끝무렵은 그 반대이고. 이후 한때는 노부모들의 역귀성이 신문 사회면에 신풍속도로 소개됐다. 그런데 이제는 상·하행선 구분없이 연휴내내 비슷한 교통량을 보인다고 한다. 시댁의 차례가 끝나기 무섭게 친정으로 줄달음을 쳐야해서다. 최근 들어서는 설은 본가에서, 추석은 처가에서 지내는 등으로 형평 명절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저 남쪽지방에서는 아직도 매년 늦가을이면 먼 조상들 산소를 찾아 묘제(시제)를 지낸다. 여기서도 주문 제사상이 등장한 지가 여러 해 됐다. 어느 가문의 묘제라고만 해도 알아서 필요한 제수음식을 갖춰 산등성이까지 가져다준다. 성인도 시속(時俗)을 따른다고 했다. 조율이시(대추·밤·배·감의 순서), 좌포우해(포는 왼쪽, 젓갈은 오른쪽), 어동육서(생선은 동쪽, 육류는 서쪽) 등에 얽매일 일이 아니다. 끝내는 나라도 지켜내지 못했던 못난 양반문화의 잔재일 뿐이다. 차례상의 가짓수보다는 조상들 신위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정성어린 마음이면 부족함이 없다. 기자도 내년 설에는 느끼한 '지글지글' 음식들 좀 줄일 생각이다. 대신 선친이 생전에 안주로 즐기시던 피데기 대구포를 한 접시 올리고.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