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합은 부부 간에만 맞아야 하는 게 아니다. 땅과 그 위에서 벌어지는 활동도 궁합이 맞아야 번성한다. 식물과 토양이 궁합이 맞아야 뿌리를 내리고 번성하듯이 땅 위에서 벌어지는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번성하는 지역은 궁합이 잘 맞는 곳이고, 쇠퇴하는 지역은 궁합이 맞지 않는 지역이다.

 

한때 인천에서 밀라노 디자인시티를 추진했다가 실패했다. 바로 궁합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자인 토양이 전무한 인천에 디자인시티를 건설한다고 했으니 성공할 리 없다. 하지만 송도 경제자유구역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바로 옆에 인천공항이 있어 경제자유구역을 위한 영양분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도시에서 자주 목격된다. 서울 현대미술관 본관은 경기 과천 청계산 자락에 있다. 산자락과 현대미술관이 궁합이 맞겠는가. 관람객이 지금도 별로 없고, 겨우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영화에나 나왔다.

그러나 서울 분관이 경복궁 옆 삼청동에 자리 잡더니 주변에 갤러리뿐만 아니라 북카페, 레스토랑, 부티크샵이 들어서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그래서 북촌이 활기를 띠고 서울 원도심이 살아나고 있다.

반면, 국립중앙박물관은 용산공원 옆에 자리 잡아 주변은 모두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니 중앙박물관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중앙박물관이 명동에 있거나 영등포사거리에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러면 박물관 옆에 갤러리가 들어서고 레스토랑, 고미술품 취급 비즈니스가 형성되고 아트샵들도 개장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는 만남의 공간, 소통의 공간, 공공의 공간이 형성되고, 문화지구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섬처럼 놓여 있다. 땅을 잘못 골라 공간과 활동의 궁합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인천은 어떠한가. 송도신도시 '아트센터 인천'이 궁합이 맞는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또 지금 계획 중인 뮤지엄파크는 정말 궁합이 맞는 곳에 건립되고 있는 것인가. 필자가 보기엔 아니다. 호수변에 아트센터라니?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이미 50년 전 도시에 만들어진 시설이다. 그것을 모방해 호수변에 아트센터를 만들었으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왜 중심지에 만들지 못하고, 외곽에 덩그러니 이런 시설을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어딘가에 아트센터는 있어야 하고, 그곳에 공지가 있으니 구색 맞추기로 만들자는 방식으로 건립됐다. 그러니 땅과 활동에서 궁합이 맞을 리 없다.

지금 설계 중인 인천 뮤지엄파크도 도시계획을 보면 주변이 온통 아파트 숲을 이루고 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판박이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공지가 있으니 그냥 그곳에 박물관과 미술관을 집어넣자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래서야 공간과 활동이 궁합이 맞겠나 심히 걱정된다. 관계자는 인근에 인하대가 있어 젊은 층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란 궁색한 변명을 한다. 인하대는 예술대학의 뿌리도 없다. 인하대를 염두에 두었으면 그 공간을 차라리 테크노파크나 벤처 단지로 조성하는 게 적합하다. 웬 뮤지엄파크란 말인가.

그러나 인천에 땅과 궁합이 맞는 활동이 있다. 바로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이다. 종합문화예술회관이 구월동에 있어 주변에 로데오거리가 형성되고, 문화예술인들이 모이는 지역으로 번성하고 있다. 그러니 아무 곳에 무작위로 땅이 있다고 비즈니스, 공공시설을 설치하지 말라는 것이다. 살기 좋은 도시는 이런 시설들이 적절히 배치된 곳이다. 살기 불편한 도시, 쇠퇴하는 도시는 궁합이 맞지 않는 활동들을 부적절하게 배치한 도시들이다.

이런 논리에서 풍수지리는 사라진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예전에는 자연지리가 중요했지만 지금은 인문지리, 도시지리가 중요한 요인으로 전환됐을 뿐이다. 그러니 공간과 그 위에서 벌어지는 활동이 궁합이 잘 맞는지 살펴보고 정책이나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궁합이 잘 맞으면 지역이 번성하지만, 궁합이 맞지 않으면 쇠퇴할 수밖에 없다. 도시정책은 땅과 사람과 비즈니스를 연결시켜 주는 작업이다. 궁합이 잘 맞는 정책은 성공하지만, 그렇지 않은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정책결정자는 명심해야 한다.

김천권 인하대 명예교수·인천학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