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 하네 /세월은 나를 보고 덧 없다 하지 않고 /우주는 나를 보고 곳 없다 하지 않네 /번뇌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놓고 /강처럼 구름처럼 말 없이 가라 하네"-고려 말 나옹선사의 불교 가사.

저물어 가는 2019년을 돌아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글귀다. 남의 말을 경청하며 되도록 말을 아끼지 않았는가. 허허롭게 마음을 깨끗이 하며 순수함을 바라고 갔는가.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별것 아닌 일에 화를 내지 않았는가. 위에서 아래로 흐르면서 언제나 겸손했는가. 그리하여 무엇에도 걸리지 않으며 자유롭게 지냈는가. 어렵고 힘든 일이다. 범인으로서 그렇게 사는 게 얼마나 버거운지 새삼 깨닫는다. 하긴 도인(道人)이나 그런 마음을 안고 살지, 보통 사람들은 엄두를 내기 어렵다. 그래도 살아가면서 늘 마음 속에 품으면 좋을 듯싶다.

송구영신(送舊迎新).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 매년 12월31일이면 전국 곳곳에서 해넘이·해맞이 행사가 줄을 잇는다. 세밑에서 지난 1년을 반추하며 잘잘못을 되새김질하고, 새로운 1년을 기대하며 소원성취할 수 있도록 빈다. 한 해를 성찰하고 새해를 계획한다.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담금질을 하려는 시도다. 각자 각오와 다짐은 다르겠지만, 원초적 바람은 같을 터이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도 괜찮다. 이즈음에는 평화롭고 선한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고 희망에 젖을 수 있어서다.

공자의 말씀은 오늘에도 기릴 만하다. "일생의 계획은 어려서 세우고, 1년의 계획은 봄에 세우며,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세워야 한다. 어릴 때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게 없고, 봄에 밭을 갈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 게 없으며,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 할 일이 없다." 계획이 없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어떻게 실천할지가 고민거리이고 관건이겠다.

연말을 맞아 인천의 2019년을 마무리하는 행사가 31일 '인천愛뜰'에서 열린다. 송년 주제는 '시민이 주인공'이다. 그만큼 타종식과 새해소망 풍등 날리기 등 여러가지 일에 많은 시민이 참여한다. 올해를 따뜻하게 마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는 제야(除夜)의 종을 울린다. 시위를 떠난 활처럼 속절없이 지나는 세월 속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숱한 시종(始終)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오늘의 시작은 곧 내일을 위한 마침표일 수 있지 않은가. 아무쪼록 지나간 것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떠오르는 해와 같이 새로운 희망과 열정을 태울 2020년으로 향하길 바란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