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첫발 … 빙판 위 삶 30여년
교육·클럽창단 등 유소년 양성 온힘
"하우스 내 자체 리그 만드는게 목표"



"아이들이 즐거워하며 잘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합니다."

빙판 위에 선 지 어느덧 30여 년. 아이스하키 대한민국 대표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선수가 지금은 어린 꿈나무를 키워주는 조력자가 됐다. 아이스하키 저변 확대에 남은 인생을 올인한 김성수(49) 수원 아이스하우스 대표가 주인공이다.

김 대표는 1985년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아이스하키 선수의 길을 택했다. 늘 연습에 열중했고, 한 눈 한번 팔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흐른 후, 그의 가슴에 태극마크가 달려 있었다.

그는 U16국가대표 등 학창 시절 줄곧 국가대표 핵심 선수로 활동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도 활약은 이어졌다. 1995년 실업리그 베스트 포워드상을 수상하는 기염까지 토했다.

그가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2001년부터다. 1998년 실업팀이 해체되면서 예부터 조금씩 품어온 '유소년 양성'에 힘을 쏟기로 했다. 그때부터 아이스하키 교육 프로그램 연구에 골몰했고, 3년이 흐른 후 수원 탑동 아이스링크 전임 감독을 맡았다.

"어린 시절 아이스하키를 할 수 있는 곳은 태릉선수촌이 유일했어요. 아이들이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공간과 클럽팀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유소년 양성 시스템은 여전히 미비했다. 유소년 '클럽'도 부족했고, 이들이 경쟁할 '리그'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선·후배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클럽 창단과 대회 유치에 힘썼다. 그 결과 전국아이스하키대회와 1년에 2번 열리는 유소년 리그를 만들었다. 유소년 지도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김 대표의 노력으로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유소년이 성장해 국가대표가 되는 등 꿈을 펼친 이들은 180명 이상이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수원에 유일한 빙상장이 재산권 문제 등으로 없어질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아이스하키 유소년 80명을 비롯해 피겨 스케이터 등 500여 명이 꿈을 키워가는 곳이다.

김 대표는 주저하지 않았다. 전 재산을 털어 빙상장을 지켰고 지금까지도 500여 명이 넘는 꿈나무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그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유소년 육성은 리그의 활성화가 중요하지만, 아직 그렇지 못하다"며 "아이스하우스 내 자체 리그를 만들어 선수들이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아직 외국보다 우리나라 유소년 게임 수는 절반도 채 안 된다"며 "빙상장도 부족한데 사업성이 없다 보니 쉽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함께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


◇김성수 대표 약력
 △1986년 U16중학대표
 △1988~1989년 U18오세아니아 쥬니어국가대표
 △1990~1991년 U20 월드쥬니어 국가대표
 △1992년 유니버시아드 국가대표
 △1991~1993년 성인국가대표
 △1994~1998년 석탑건설아이스하키실업팀/쌍방울아이스하키 실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