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논설실장

 

몇 달 전 인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26세의 계부가 5세 의붓아들을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했다. 집 화장실에 어린 아들의 손과 발을 케이블로 묶어놓은 채 온몸을 목검으로 마구 때렸다. 부모 앞에 한창 재롱부릴 다섯 살 어린 아이는 결국 복부 손상으로 숨을 거뒀다. 24세의 친모는 남편의 살인행위를 방조하고, 맞아 쓰러진 아들을 상습 방임하고 학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가족이 저지른 패륜범죄의 현장이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대한민국의 인명경시 풍조는 극에 달했다. 특히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하는 엽기적 살인사건도 한 둘이 아니었다. 최근 2년간(2017~2018년) 전국에서 468명이 가족간 범죄에 연루됐다고 한다. 가족 살인, 살인미수, 폭행치사 등이었다. 경기도 118명, 서울 75명에 이어 인천도 33명으로 패륜범죄가 기승을 부렸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병훈(더불어민주당·경기 광주시갑) 의원이 밝힌 내용이다. 인명경시 잔혹사에 남을 만한 기록이다.

유승현 전 경기 김포시의회 의장은 골프채를 휘둘러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년이 선고됐다.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을 뿐만 아니라 의붓아들마저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의 고유정이 구속 기소됐다. '사형시켜 달라'는 국민청원과 함께 유가족은 '살인마'라고 울부짖었다. 친족이 아니더라도 10명의 부녀자가 강간·살해당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이춘재,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사건의 안인득도 있다. 5명이 죽고 17명을 다치게 한 그에 대해 1심 국민참여재판은 사형을 선고했다. "흉악범이 양아치를 죽인 사건"이라고 호언한 장대호는 자고 있던 모텔 투숙객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토막 낸 시신을 한강에 유기했다.

삶과 죽음은 인간의 가장 엄숙한 순간이다. 생명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생과 사의 보편적 가치가 훼손되면 생명 자체도 경시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극한 범죄는 공동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되어야 한다.

또 몇 달 동안 탤런트 설리와 차인하, 가수 구하라 등이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은 그대로다. 지난해만도 1만3670명이 자살했다. 한해를 보내며 우리 사회의 인명경시 사건들이 얼마나 험악한 세상을 만들었는지 새삼 돌아본다. 갈릴리 작은 마을 나사렛에서 예수가 탄생한지 하루가 지났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진행형으로 남게 됐다. '사랑'이 '진리'처럼 작동하는 세상은 요원한가. 삶의 기초, 가정이 무너져서는 건강한 대한민국을 기대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