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인과 함께 한 '외길 26년' … 남은 삶도 동행

 

14일 정년퇴임식 … 수어교원자격증 준비 중



"26년 전, 경기도 직원연수에서 자기소개할 때 '이곳에서 정년퇴임 하고 싶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안양에 있는 청각장애인 2200명과 자원봉사자, 직원들이 함께했기에 그 약속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박경미 경기도농아인협회 안양지회 수어통역센터 사무국장이 오는 14일 까르르스타 평촌점(엔젤홀)에서 안양지회 30주년 기념 겸 정년퇴임식을 한다.

박 국장은 "농아인 가족여행 행사에 같이 갔던 꼬마 아이가 어느덧 성장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았더라"며 '훅' 지나가 버린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는 경기도농아인협회 안양지회의 역사이며, 농아인들의 산증인이다.

수화교실과 수어경연대회, 건강증진대회, 장애인주간 행사, 문화복지 교육, 배리어프리 영화관람 등은 그가 26년 동안 농아인들과 호흡하며 쌓았던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프로그램이다. 88올림픽 때 자원봉사자로 첫 인연을 맺은 수어가 평생 직업이 될 줄 몰랐다. 이제 그는 앞으로 인생 이모작의 삶도 농아인들과 함께하기 위해 수어교원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왜, 농아인은 2명씩 다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 질문 속에 건청인(일반인)이 청각장애인을 생각하는 인식의 단면이 들어있다고 한다. 청각장애인도 혼자 다닌다. 겉모습은 건청인과 똑같은 모습이어서 혼자 있어도 장애가 있다는 표시가 드러나지 않을 뿐이란다. 도와달라고 말을 못 한다는 것. 그래서 눈에 잘 띄지 않는 농아인들은 같은 장애인이라도 시각이나 지체 장애인들보다도 취약한 상황에 많이 노출돼 있다. 하지만 수화를 몰라도 그들을 도와야 할 때는 특별하지도 어렵지도 않은데, 수첩(핸드폰)을 꺼내서 필답으로 대화하면 된다고 한다.

그가 지회와 센터 일을 해오면서 잊을 수 없는 몇몇 순간들을 들려준다.

"오래전이지만, 농아인이 사기 담보 제공으로 갖고 있던 집을 잃게 됐는데, 2년 동안 같이 법적 소송 투쟁을 벌인 끝에 되찾았을 때, 그 뿌듯한 기분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 지회에서 운영하는 수어교실 출신자 중에 수어통역사 합격자가 많이 나온다는 점에서도 자부심을 느낀다. 또 일반 학교, 특별활동반에서 가르친 고등학생이 재활복지대 수화과(수어교원과)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줬을 때 보람을 느꼈다."

농아인에게는 농문화가 따로 있다. 일반인과 소통은 안 되지만 농아인끼리 수어로 의사소통하며 형성한 공동체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또 그들만의 특유한 문법이 있다. 그런데 수화교육도 농아인의 입장(농식)이 아닌 건청인의 의식을 반영하는 수화라는 점을 아쉬워한다. 그 지점이 여전히 우리 사회가 농아인을 바라보고 배려하는데 미치지 못하는 인식과 제도의 한계점이란다.

"전국에 청각언어장애인은 36만명에 이른다. 수화도 언어다. 수어를 배우지 않고는 그들을 도울 수 없다. 정보에도 취약하다. 그들의 특성에 맞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청각언어장애인의 수어권 보장을 위해 학교 현장 등 모든 공적 영역에서 현장수어통역사 배치가 점차 확대되기를 바란다."

/안양=글·사진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