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인천엔 한국 최초의 역사·문화를 담고 있는 게 수두룩하다. 인천항이 개항(1883년)하면서 근현대 시기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이룬 덕이다. 사라진 것도 많지만, 지금도 계속 이어지거나 명맥을 유지하는 것도 흔하다. 한국 최초를 보면 지방우체국의 원조 인천우편국, 화교 사회의 기원 차이나타운과 짜장면의 탄생, 감리교 첫 예배당인 내리교회, 근대적 기상 관측소인 인천측후소,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과 각국공원(자유공원), 은화를 주조한 인천전환국, 경인철도, 팔미도 등대, 천일염전, 인천시립박물관 등 아주 다양하다.

이들 가운데 팔미도 등대의 경우 인천일보와도 관계가 깊다. 본보 창간(1988년 7월15일·인천신문) 당시 등대가 불을 밝히는 장면을 제호 배경으로 삼았다. 모든 신문이 '세로짜기'를 기본으로 할 때, 인천신문 제호 배경엔 한동안 등대가 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에서 등대로선 팔미도 등대가 처음으로 세워졌을 뿐만 아니라, 어두운 세상에 불을 밝혀 앞으로 나아가자는 신문의 취지와도 부합됐기 때문이다. 오늘날엔 신문마다 '가로짜기'를 하면서 제호 배경은 없어졌지만, 인천신문에서 시도한 그것은 신선했다.

현재 중구 무의도 산 373에 주소지를 둔 팔미도 등대(면적 11.87㎡, 높이 7.9m)는 1903년 6월1일 점등했다. 국내 첫 등대 역사가 시작된 날로, 인천시는 시 유형문화재 40호로 지정해 보존 중이다. 그런데 해양수산부는 올해 초 대한민국 1호 등대로 부산 '가덕도 등대'를 선정하고, 국제항로표지협회에 추천했다. 분명히 잘못한 일인데도 해수부는 인천해양수산청에서 팔미도 등대를 후보로 추천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해양 관련 일을 하는 곳에선 다 아는 사실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가. 해수부에 시정을 촉구한다.

이와는 별도로 다행히 팔미도 등대는 국가문화재로 지정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이 조사한 결과 문화유산 가치가 크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문화재청이 나서 국가문화재 지정을 요청한 만큼, 시도 팔미도 등대를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시키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국내 최초 팔미도 등대는 서남해에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는 등 지정학적 해양교통 흐름의 중심에 있고,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의 요충지라는 게 시의 지정 사유 설명이다. 시는 10일 시 문화재위원들과 함께 팔미도 등대 현장조사를 벌이는 한편, 이달 중 문화재청에 국가문화재 승격을 신청할 예정이다. 아무쪼록 팔미도 등대가 국가문화재로 지정돼 시민들에게 인천에 대한 자부심을 높였으면 싶다. '일류 인천'으로 나아가는 밑거름은 이런 데서 비롯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