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기자 사회에는 기발한 도둑 취재가 전설처럼 전해오기도 한다. 1980년대 초 과천 정부청사 시절이다. 어느 부처에서 꽤 기사거리가 되는 결정을 내리는 회의가 예고돼 있었다. 출입기자 하나가 새벽같이 출근해 회의장에 잠입했다. 회의실 천정 석고보드를 뜯어내고 올라가 웅크렸다. 회의 결과는 물론, 참석자들의 발언까지 다 건질 속셈이었다. 그러나 도중에 들통이 나 미수에 그쳤다. 숨소리도 내지 않고 참아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 기자는 스스로 인간 도청장치가 되려했던 것이다.

▶'내 귀에 도청장치' 사건은 1988년 8월의 어느날 MBC 뉴스데스크에서 벌어졌다. MBC 뉴스데스크가 지금같지 않고 시청률 1위를 구가하던 시절이다. 앵커가 다음 뉴스를 소개하는 도중 한 남자가 방송실 뒤편에서 갑자기 난입했다. 그러고는 "귓속에 도청장치가 들어있습니다. 여러분"을 서너차례나 외치다 끌려나갔다. 시청률도 높았고 막 민주화가 이룩된 시절이라 금방 유행어가 됐다. 십수년 전쯤엔 '내 귀에 도청장치'라는 이름의 록밴드도 나와 인기를 끌기도 했다.

▶도청하면 역시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원조격이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굳히려는 공화당 비밀공작반이 한밤에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잠입한다. 이 빌딩 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 체포된 정치적 사건이다. 닉슨은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했으나 거짓말로 드러나면서 의회의 대통령 탄핵 결의로까지 몰린 도청 사건이었다. 이 사건 하나로 닉슨은 임기 도중 사임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아야 했다.

▶인천시의회가 내년도 예산에 의회 내 곳곳에 도청탐지 시스템 설치 예산을 요구했다고 한다. 의장실과 1·2부의장실, 운영위원장실, 기획행정위원장실, 문화복지위원장실, 산업경제위원장실, 건설교통위원장실, 교육위원장실 등 9곳이다. 상시 무선 도청탐지 시스템 구입비 1억9374만원 및 설치 공사비 1000만원 등이다. 자유로운 의정활동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통신보안을 강화해야 한다는 명분이다.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도청탐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천시는 시민들을 대변하는 의원실에 수억원의 세금을 들여 도청탐지 설비를 해야 하느냐를 고민했으나 결국 수용한 모양이다. 집행부에도 시장실과 부시장실에만 설치돼 있으니 줄였으면 하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이번 제8대 의회는 '공정·투명의정'을 내걸었다. 무엇이 그렇게 그들은 불안하게 했을까. 내년에는 몰래카메라탐지 시스템까지 요구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