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 유학사상의 틀 '사물·몸·마음·일'
▲ 한두정 편, 1940,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격치고> 표지

이제 이제마 선생의 역작인 <격치고>를 살펴보겠다.

 

선생은 <격치고서> 마지막 문장에서 "<격치고>라는 원고가 어찌 곽외가 말한 천리마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겠는가!(藁亦 豈非郭?千里馬之乎)"라 외쳤다. 하지만 <격치고>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아직 <격치고>의 시대가 천리마처럼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 또한 모를 일이다.

<격치고(格致藁)>라 하였으니 '격치(格致)'라는 말부터 풀어본다. 격치는 <대학>에 보이는 '격물치지(格物致知)'에서 가져온 말이다. 이치를 궁구하는 공부를 오래도록 힘써 하면 하루아침에 활연관통(豁然貫通, 모든 이치가 툭 트이게 됨)하게 된다는 뜻이다. 선생은 '격'을 바로잡는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즉 선생은 '사물의 고유한 법칙을 궁리하여 알고 그 올바른 법칙에 따라 자신을 바로잡아 <중용>의 도와 <대학>의 덕을 자신에게 구현함으로써 도덕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 격치는 1880년대에 중국에서 백화문으로 서양의 과학(science)이라는 말을 번역할 때 썼다. 장지연도 이 격치를 'science'로 이해하였다. 그렇다면 <격치고>는 '과학에 대한 책' 정도의 의미로 이해해 봄직하다.
<격치고>는 세 권이며 부록으로 '제중신편'을 넣어 엮었다. 이제 <격치고> 중 우리에게 유용하게 사용될 만한 글줄을 따라 잡는다.

<격치고> 권1. 유략(儒略)
'유략'은 유학 사상을 요약해서 핵심을 파악한다는 의미이다. 구체적으로는 사심신물(事心身物)이라는 사원(四元) 구조로 세계를 파악하기 위한 인식론을 제시한다. 사심신물은 선생이 독창적으로 유학사상을 바라보는 틀이다. 이를 통해서 유학의 기본 경전인 <사서>에 담긴 중요한 철학적 주제인 학문사변(學問思辨), 성의정심(誠意正心),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등을 재해석한다.

사물(事物)
1조목: 사물[物]은 몸[身]에 깃든다. 몸은 마음[心]에 깃든다. 마음은 일[事]에 깃든다.(物宅身也 身宅心也 心宅事也)

이른바 선생이 말하는 '사상(四象)'이다. '사심신물(事心身物)'로 선생은 사물, 몸, 마음, 일, 이 넷이 상호작용하면서 사상의 기초가 된다고 한다. 물과 사가 본체라면 신과 심은 작용으로 체용의 관계이다. 또 물과 신은 공간을, 심과 사는 시간으로 볼 수 있으니 시간과 공간의 일체화다.

선생은 사심신물의 '사상'과 인·의·예·지 사덕을 항상 결부시켜 설명한다. 이는 사상이 인간 본성에 내재화된 사덕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라는 뜻이다. 선생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판단하여 자신의 논리를 전개한다.

선생은 2조목에서 "사물은 머물러 있는 것, 몸은 활동하는 것, 마음은 깨닫는 것, 일은 맺는 것이라 풀이하였다. 선생은 이렇게 모든 것을 넷으로 풀어낸다. 아래 12-2조목은 살아가며 난관에 부딪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말이다.

12-2조목: 어두운 마음은 배우는데 어두운 것이다. 닫힌 마음은 분별하는데 닫힌 것이다. 막힌 마음은 묻는데 막힌 것이다. 얽힌 마음은 생각하는데 얽힌 것이다.

관인(觀仁)

1조목: 어짊을 관찰한다[觀仁]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힘써 일하는 것을 봄이다.
아래 6조목은 우리가 잘 아는 사단(四端)을 끌어왔다. 즉 인의예지로 이 역시 네 개가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

6조목: 지혜가 없는 어짊[仁]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어짊이다. 이는 어진 것 같지만 어진 게 아니다.
어질지 못한 지혜[智]는 간교하고 교활한 지혜이다. 이는 지혜로운 것 같지만 지혜가 아니다.
의로움 없는 예의[禮]는 번거롭고 실속 없는 예의이다. 이는 예의인 것 같지만 예의가 아니다.
예의 없는 의로움[義]은 강제적이고 억압하는 의로움이다. 이는 의로움인 것 같지만 의로움이 아니다.

독자들께서는 선생이 말하는 인의예지를 깊이 되새김해 볼 일이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br>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br>​​​​​​​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고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