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흥 논설위원

 

국어사전은 '갑질'에 대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제멋대로 구는 짓'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 단어는 2013년 이후 대한민국 인터넷에 등장한 신조어라고 한다.

당시 한 유제품 업체 영업사원이 폭언과 함께 대리점주에게 '물량 밀어내기'를 강요한 녹취파일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그 다음해인 2014년에는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이 발생해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후 대한항공 가족들의 갑질이 계속 공개되면서 오너 일가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대기업 계열사 대표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 치료비를 준 사건은 영화 '베테랑'으로 재구성돼 관객 수가 1300만명에 이르기도 했다. 최근에는 자유한국당이 영입을 시도한 박찬주 육군대장의 '공관병 갑질 사건'이 새삼 정치권의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엊그제 인천시의회에서도 느닷없는 '갑질' 논란이 터져 나왔다. 시의원 한 명이 행정사무감사 회의 도중 공무원들을 상대로 거친 언사를 쏟아내며 갑질을 했다는 것이다.

"대답 잘 하세요. 이런 식으로 하면 내가 콘텐츠 관련 대변인실 예산 다 삭감할 겁니다." 여기에 그쳤으면, 한순간 벌어진 해프닝으로 치부될 만도 했다.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이 시의원은 같은 사안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면서 "오늘도 갑질로 시작하겠다"고 공언했다. 전날 자신의 질문이 일부 언론에 '갑질'로 보도되자, 불편한 심기를 시 공무원들에게 드러낸 것이라고 한다.

회의 영상물을 확인한 시민들은 이 장면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300만 인구의 인천 시정과 11조원의 예산을 다루는 시의원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갑질'을 공언한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 시의원은 지난 10월 15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주민참여예산과 관련해 실명이 거론되기도 했고, 이와 관련해 한 시민단체는 '고발'을 벼르고 있다고도 한다.

국민권익위는 지난 3월 25일 '지방의회 의원 행동 강령' 개정안을 통해 지방의원들의 '갑질'을 금지하는 조치에 들어갔다.

직무권한을 남용하여 공직자나 직무관련자에게 부당한 지시나 의무를 부담하게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시의회는 현재 시 업무 전반을 돌아보는 행정사무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어 인천시가 제출한 11조원 규모의 내년 예산을 심의 의결해야 한다. 시의원들의 신중한 언행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